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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사람>

요14:16-24

기독교의 역사를 성부, 성자, 성령의 사역에 따라 세 시대로 구분하는데,   구약시대를 성부시대라 하고 신약시대를 성자시대라 하고, 교회시대를  성령의 시대라고 합니다.  교회는  성령의 역사로 시작되었고, 성령의 힘에 의해서 선교가 진행되었습니다.  성령에 대하여 요한복음 14장 26절에는 "보혜사"라고 하였는데 보혜사란 위로자요, 변호자요,   해석자 됨을 말합니다.  보혜사의  원어는 파라클레토스인데 '파라'는 '곁으로'라는 뜻이고, '클레토스'는 부른다는 뜻으로,  옆에 한 인격자가 계셔서 위로하고 변호하고 해석해 준다는 의미의 말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시는 이유는 영원히 함께 있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아담을 창조하시고 그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아 하와를 만들어 함께 살게 하셨습니다.  즉 본질적으로 인간들은 함께 살도록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함께 살고, 더불어 사는 것이 아름다운  삶이요, 선한 삶이요, 좋은 삶이요, 행복한 삶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은 바로 고독한 사람, 즉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없는 사람입니다.
중국의 유명한 석학 임어당 선생이  40년을 방황하다가 하나님께 다시  돌아와서 말한 첫 마디가 '하나님 없이 살았던 지난 40년은 완전히 고아와 같은 생활이었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는 신학을 공부하였으며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었는데, 중간에 타락해서 40년간 하버드 대학에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은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무신론적인 책을 많이 썼습니다.  긴 세월을 방황하다가  결국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며 반성하기를 지난 생활은 고아 같은  생활이었다고 의미 있는 고백을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았던 40년이 고아와 같은 생활이었다는 것은 홀로 불안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고독과 불안에서 벗어나 참 평안과 행복을 맛보게 된 것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신앙생활의 결과였습니다.
오늘날의 교인들 중에는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성경적 지식도 충분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고아처럼 두려워합니다. 머리로 알고 있는 예수는 있어도  마음으로 알고 있는 예수가 없고, 역사적 예수에 관한 지식만 가지고 있지, 예수 안  믿는 사람과 별 차이가 없는 공허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어서 고아처럼 행동합니다.   머리에는 믿는데, 가슴으로 믿지 못하므로 그 주님이 실제로 세상을 살아가는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매주일 사도신경을 고백하듯 그분에 대하여 입술로는 고백하지만 전적으로 그분에게 의존하는 믿음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얇은 종이 한 장은  누구나 쉽게 찢을 수 있으나 콘크리트 벽에 붙이면, 그 종이를 찢거나 뚫지 못합니다.  그것은 강하고 두터운 콘크리트가 그 종이와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개개인을 보면 미약합니다.  이렇게 연약하기 그지없는 인생이지만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진 만유의 주 예수 그리스도가 보혜사 성령으로 함께 하시면 그 누구도  찢거나 꺾을 수 없는 능력을 가지므로 우리는 성령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5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