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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이해하는 그리스도인

(요2:23-25)

『유월절이 되어 예수님께서 명절날에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들이 그분께서 행하신 기적들을 보고 믿었으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그들에게 맡기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으셨으니 이는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심이더라』(요2:23-25)

1.교회를 떠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많은 이들이 우리 교회로 오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기대하고 있고, 또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기쁜 일들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중 어떤 분들은 우리 교회에서의 생활을 적응하지 못하고 떠나게 될 것입니다. 무슨 이유로든 우리 교회를 떠나게 될 때에는 아픔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에 대해, 또는 우리 성도들에 대해 심한 폄론과 좋지 못한 감정을 가지고 헤어지더라도 그분들에 대한 마음은 진정으로 미움보다 살쩜이 떨어져 나가는 아픔과 같은 것이 더 느껴지게 될 것입니다.
나는 여기에서 성령으로 다시 난 것을 간증한 성도들이라면 반드시 언젠가 주 앞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여러분의 그동안의 만남이 아름다운 기억이 되었다면 헤어짐이 아름다운 소망이 되게 하십시오. 언젠가 다시 만날 때를 소망하며 헤어지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찬송가 524장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2.교회의 가르침과 그들의 삶이 일치할 수 없어서 떠나는 사람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우리 교회의 가르침이 그들의 삶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교회의 가르침들을 받아들이는데 쉽지 않을 것입니다. 편하게 생각하며 신앙생활하기를 원하셨던 분들은 우리 교회를 향해 "율법적이다" 혹은 "종교적이다"라는 말을 하며 멀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법보다는 은혜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어떤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 우리들이 마치 법이 있는 사람들처럼 느껴졌다면 우리는 바로 가르치고 있으며 또한 바로 행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교회가 다른 복음적인 교회보다도 기도를 중요시합니다. 어떤 데서는 행하지 않는 믿음과 감사의 십일조를 드리고 있습니다. 구령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전도를 강조합니다. 비록 안식일이나 주일 성수는 아니더라도 주님께서 구별하신 한 날로서 주님의 날을 인정하며 그 날 주님 앞에 모이기를 힘쓰고 있습니다. 여자는 단정하게 복장을 갖추고 긴치마를 입을 것을 권장합니다. 남자는 짧은 머리에 정장과, 품위있는 모습을 원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편하게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에게는 무거운 종교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만일 그렇게 느끼며 우리 교회에 적응하는 것이 힘들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분들은 편한 삶을 찾아 가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교회가 무엇인지, 교회 안에는 어떤 질서가 있는지 이런 것들은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들은 언제까지나 예수 피로 단번 속죄받은 사실만을 간증해야 할 것입니다. 성도간의 교제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교회가 하는 일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교회에게 주어진 영광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하는 것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3.인간관계를 통해 나타난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또 하나의 이유를 든다면 그것은 인간적인 관계 때문입니다. 나는 여러분 중에 어떤 사람들이 이성교제를 하다가 잘 되지 않아서 둘 다 교회에 못나오는 일이 생길까봐 기도합니다. 나는 여러분들 중에 어떤 사람들이 함께 사업을 하다가 의견이 맞지 않아 둘다 교회에 못나오는 일이 생길까봐 기도합니다. 함께 주님의 일을 한다고 협력하다가 뜻이 맞지 않아 둘 다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일이 생길까봐 기도합니다. 우리는 서로가 섬기는 다른 지체들의 모습을 보고 놀라서 아주 절망하며, 상처받고, 모든 것을 끝내려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 저는 이 말씀을 전하기 전에, 먼저 우리가 했던 협약들의 한 부분을 읽어드리고 싶습니다. 누구나 본 교회의 회원이 되기를 원했던 사람은 다같이 이러한 약속들을 했습니다. 하나님과 성도들 앞에서 약속한 것에 대해 신실한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형에 해당하다고 정하신 죄인들의 부류 가운데는 이 약속을 어기는 자들이 포함됩니다.

『...지각이 없는 자요, 언약을 어기는 자요, 타고난 애정이 없는 자요, 화해하기 어려운 자요, 긍휼이 없는 자라. 이런 일들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롬1:31,32)

물론 구속받은 백성이 약속을 어긴다고 해서 그가 받았던 구원이 취소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구원된 사람이라면 했던 약속들 앞에 신실하기를 원해야 정상일 것이고 반드시 신실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가정과 개인의 기도와 예배를 유지하고; 우리 자녀들을 말씀의 바탕 위에서 신앙적인 교육으로 양육하며; 우리의 친척, 친구, 그리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애쓰며;


그래서 우리는 구령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전도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명령이시고 생명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들 중에 하나입니다.

세상에서 주의 깊게 행동하며; 사업과 거래는 정직하게, 직장 근무는 충실하게, 그리고 모든 언행은 모범적으로 하며, 불평, 험담, 모함, 지나친 분냄을 피하고; 영화관 출입, 도박, 록음악 등 비성경적인 음악, 댄스 등의 세상 오락과 세속적인 무성별 옷차림과 헤어스타일 등은 금하며, 어떤 형태의 담배, 술, 마약 등을 팔거나 먹지 않으며; 모든 비밀 조직에 가담하거나 그러한 불신자들과 함께 동반관계를 맺지 않으며, 지역주의, 족보, 학벌 등 파당주의의 관련된 모든 활동에서 분리한다.


우리들은 엄격하게 생활할 것을 서약했습니다.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신앙은 가증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족속들이 가증하다는 이유로 그 땅이 그들을 토해냈다고 했습니다(레28:25-28). 그런데 주님께서는 요한 계시록에서 라오디게아 교회의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미지근함 때문에 그들을 토해내시겠다고 했습니다(계3:16). 그것은 곧 이것도 저것도 아닌 신앙이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이며 색깔이 불분명한 신앙은 하나님께서 토해내실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는 형제애로 서로 살피고 돌보아주고, 권면하며 기도할 때마다 서로를 기억하며; 병들고 고통당할 때 서로 위로하고 도우며, 다른 이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말에 예의를 갖추어

여러분은 말에 예의를 갖추기로 했습니다. 연장자에게 하는 말과 동년배에게 하는 말이 다릅니다. 동년배는 농담을 잘 받아줄 수 있지만 연장자에게는 그것이 결례가 될 수 있습니다. 결혼한 사람에게 하는 말과 결혼하지 않은 사람에게 하는 말이 다릅니다. 만일 여기서 대학생인 어떤 자매가 결혼했는데도 공적인 장소에서 이름을 함부로 부른다면 여러분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예의를 갖추어 ~자매님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며 그 결혼한 자매에게 애기가 있어서 조금 더 친근하게 부른다면 ~엄마 식으로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름만을 함부로 부르는 것은, 예를 들어 "현미야," "애심아" 식의 호칭은 예의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상호 공감대를 기르고; 우리의 형제들을 실족케 하거나 주 예수님의 이름에 해가 되는 모든 일을 금하며; 분내기를 더디하며, 일단 다른 이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 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기억하여 지체 없이 화해를 구할 것을 약속한다.

여러분들은 화해를 구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3.떨어져 나가는 일, 쉽게 생각해서는 안되는 일


나는 적어도 여러분이 우리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라고 한다면 어떤 문제들로 인해 쉽게 달아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병원에서 신체의 어떤 한 부분을 절단하기 위해 수술할 때,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환자가 "짤라요" 한마디 했다고 의사들이 쉽게 자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정말, 꼭 잘라야 하는가를 따져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잘라야 한다면 이것저것 그것을 자를 수밖에 없다는 증빙자료들과 동의 서류들 서명이 들어간 서류들을 갖추어야할 것입니다. 보호자가 있다면 보호자의 확인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만큼 그 일이 신중하게 진행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느 한 교회에 출석하거나 교회를 떠나는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적어도 어떤 교회가 주님의 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또 그 안에 소속되기를 원했다면, 할 수 있는 한 그 교회의 지체로서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할 것입니다. 문제가 있다면 화해하기를 구하며 화합하기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4.화해하기를 구하는 삶


A.화해를 가능하게 하는 사랑
만일 제 아내와 다투게 된다면 저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화해하기를 구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아내를 끔찍히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제 친구 중에 어떤 이와 다투게 되었다면 저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화해하기를 구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제 친구를 소중하게 여기며 사랑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일 여기에 있는 목사님들과 제가 개인적으로 뜻이 많지 않아 어떤 일 때문에 힘들어하게 된다면 저는 어떤 일이 있어도 화해하기를 노력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존경하며 또한 사랑하는 분들로서 주님 앞에서 함께 동역자된 의미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있다면 다시 화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기에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인 우리가 화해할 수 있었습니다.

B.화해를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
만일 우리들이 이 교회를 사랑하신다면 어떤 분들이 우리들의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우리는 일방적으로 달아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 하나님께서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달아나셨더라면 나는 오늘 이렇게 여러분에게 그분의 구원에 대해 말씀드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주 하나님께서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온전치 못해 꼴보기 싫어하셨더라면 나는 더 이상 여기서 그분이 베푸신 은혜를 설명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주 하나님께서 내 사는 모습이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가증해서 못쓰겠다며 고개를 흔들면서 뒷걸음 치셨더라면, 그래서 내게서 떠나고 나를 돌아보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분께서 자비로우시다는 노래를 부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아주 못난 나의 약점을 다 아시면서도 내게 접근하셨고 나를 용납하셨습니다. 그분이 택한 방법은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끌어안고 품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이 내게 손길을 내밀기 위해 사용하신 분은 그분의 독생자이셨습니다. 그분이 그래도 내게 소망이 있다며 따스한 사랑을 전하기 위해 보내셨던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을 통해 사랑과 화해를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향하여 이렇게 나타났으니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아들을 보내시고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헌물로 삼으신 것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4:9-11)  

5.사람에게 맡기지 않는 삶


우리들이 사람 때문에 실패하는 이유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걸었던 많은 기대가 오히려 우리를 힘들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초기에 행하신 기적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믿었습니다. 그분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오늘 함께 읽은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결코 그 자신을 그들에게 맡기지 않으셨습니다. 이 맡기지 않았다라는 말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출애굽기 20장 14절에서 "간음하지 말라"는 말에 '맡기다'는 의미의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간음에 맡기지 말라"는 뜻입니다. 레위기 5장 21절에서는 "만일 어떤 혼이 범법하고" 할 때, 여기에도 이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범법에 맡기면" 이라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간음에 맡기지 말아야 합니다. 죄악에 맡기지 말아야 합니다. 온갖 좋지 못한 것들에게 맡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듯이(렘9:5 악, 신5:18 간음, 고전10:5 음란) 우리는 또한 사람에게 우리 자신을 맡겨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왜 주님은 사람들에게 그 자신을 맡기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오늘 본문의 말씀대로 그분이 사람들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또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보다 거짓되고 심히 사악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알리요마는?』(렘17:9)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니 그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행, 도둑질, 거짓증거, 신성모독이니 이러한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며....』(마15:18-20a)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너희 마음 속으로 악을 생각하느냐?』(마9:4)
『이는 그분께서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시103:14)

예수님께서는 사람 안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아셨습니다. 고린도 교회나 계시록에 등장하는 아시아의 일곱교회를 살펴보십시오. 온전한 교회는 없었습니다. 문제가 많았습니다. 때문에 우리의 교회가 온전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물론 주님이 흠없는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약속은 온전하지만 우리의 실상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어떤 사람에게 거짓된 것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어떤 사람의 거짓된 것을 보고 실망합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어떤 사람들은 음흉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사람의 음흉함을 보고 상처를 입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계산적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보고 우리들의 마음이 힘들 수도 있습니다. 남들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조금도 돌아보지 않으면서 자기가 하는 일에는 모두가 관심 갖고 참여해주길 바라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들은 그런 형제나 자매를 보면서 괴로워할 수도 있습니다. 남들이 힘들거나 어려운 것은 생각지도 않고 자기 편에서만 말하거나 행동하기 때문에 그 말들을 듣거나 행동을 보면서 속상해할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이에게는 우쭐거림이 강해서 다른 이들의 유약한 신앙을 견딜 수 없어하며 마치 자기 자신이 꽤나 진보한 사람처럼 행세하므로서 연약한 여러분들 중에 어떤 사람은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여러분이 힘들어하다가 마침내 뒷걸음질치게 할만한 요소들이 교회 안에는 많다는 것입니다. 이 때 여러분에게 드리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사람에게 그 자신을 맡기지 않았듯이 여러분 역시 사람에게 여러분 자신을 맡기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6.사람에게 맡긴 예들


어떤 일을 해놓고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까?"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들에게 자기를 맡기는 것입니다. 어떤 노래를 해놓고 "사람들이 무어라 평할까?" 생각했다면 그것은 사람들에게 자기를 맡기는 것입니다. 어떤 봉사를 해놓고 "사람들이 무어라 인정할까? "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사람들에게 자기를 맡기는 것입니다. 어떤 책을 써놓고 "사람들이 어떻게 평할까?"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사람들에게 자기를 맡기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자기를 맡기지 마십시오. 또 종교인들에게 자기를 맡기지 마십시오. 교회만 다닌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도 자기를 맡기지 마십시오. 어떤 그룹의 리더가 되었을 때, 우리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자기를 맡기지 마십시오. 아니 그 누구에게도 자기를 맡기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어떤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 최고의 목적이 되지 말라는 말입니다.

흔히들 대중 스타가 되면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자기를 맡기려고 합니다. 그 사람들의 요구와 구미에 맞는 음악과 연기를 하려고 합니다. 처음에는 신실했던 복음성가 가수가 랩을 한다고 야단이고 록을 한다고 떠들어댑니다.
흔히들 인기 있는 목사가 되면 사람들에게 자기를 맡기려고 합니다. 복음과 성경적인 진리는 뒷전이고 사람들의 귀와 마음을 즐겁게 할만한 가르침, 쇼킹한 가르침들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기를 기대하면서 이미 성경은 덮어놓고 예화집이나 그럴듯한 교훈집을 뒤지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흔히들 어떤 회사나 그룹에서 인정을 받게 되면 더욱 미친 듯이 그 안에서 일을 합니다. 그것이 정상적인 주님의 일인가는 생각해볼 겨를도 없습니다. 이미 그 흐름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매달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는 그 일로, 또는 그 부류의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로 작정했기 때문입니다.
잠깐 멈추십시오. 여러분의 창은 사람에게 열려있습니까? 하나님께 열려있습니까? 여러분들이 붙들고 있는 사업이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까, 사람을 위한 것입니까? 세심하게 검토해보십시오.

주님께서는 오직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일을 위해 일하셨습니다. 그분의 능력이 나타나자 많은 이들이 그분을 따랐습니다. 그분을 추종했습니다. 그분의 일에 대해 믿는 사람도, 거절하는 사람도,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람도, 어쨌든 많은 이들이 그분을 따르고 있었으나 아무것도 게의치 않고 열심히 하셨습니다. 우리들의 일에 대해 칭찬하는 사람도 있고, 폄론하는 사람도 있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저 바라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주님을 위한 일이라면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하지 말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이들에 대한 입장을 고려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무엇이 우선이냐는 것입니다. 거짓선지자의 특성 중에 하나가 모든 사람에게 칭찬 받으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너희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대언자들에게 이같이 행하였느니라』(눅6:26)

교회에서 어떤 일들을 할 때, 사람의 칭찬을 생각하고 했다면 우리들은 순간 거짓 종들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결혼할 때 사람들의 시선을 생각하며 배우자를 고르는 것을 우선적으로 생각했다면 우리는 주님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어떤 일거리 내지는 직장을 구할 때, 사람들이 알아줄 만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만하고 칭찬 받을만한 기준으로 그런 것을 골랐다면 우리는 말로만 주님을 위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우리 자신을 맡기지 마십시오. 사람들을 생각하며 한 어떤 일들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이 없을 때 우리는 실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생각하며 한 어떤 일들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이 시큰둥할 때, 우리들은 상처를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을 기준으로 한 어떤 일들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이 별로일 때, 우리들은 무시당한 감정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전 다시 말씀드립니다. 사람들에게 우리 자신을 맡기지 마십시오. 몇 십 년간 사람의 인정을 위해 영원한 하나님의 인정하심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아주 짧은 순간 사람의 알아줌을 위해 영원하신 하나님의 알아주심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네 일들을 주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생각하는 것들이 굳게 세워지리라.』(잠16:3)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기다리겠나이까?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39:7)

여러분들은 주님께 보여드리기 위해 일하십시오.

『오직 그분께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딤전6:16)

이 말의 엄청난 의미를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분께만 죽지 아니함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그 사람이 죽으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주님께 보여드리려고 했던 일은 주님께서 오랫동안 영원히 기억하십니다.

7.하나님께만 하면 다인가?


제가 사람에게 맡기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니까,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님들을 대하는 여러분들의 태도가 너무나 자유분방할까 두렵습니다. 시험에 든 어떤 형제나 자매를 위로할 때, 우리가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사람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라"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게 더 적절한 충고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15장에서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며 부모에게 소홀한 것에 대해 입술로만 하나님을 존경하는 자들이라고 질책하셨습니다.

함께 생각해봅시다. 만일 우리가 함부로 거짓말을 하면서 나를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라고 말한다면..., 만일 우리가 어떤 사람 앞에서 남에 대해 함부로 험담하고 불평하면서 나를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라고 말한다면..., 만일 우리가 어떤 부유해 보이는 형제나 자매에게는 이리로 앉으라 안내하면서 조금 빈곤하고 환경이 어려워 보이는 형제나 자매에게는 무관심하며 불친절하면서 나를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라고 말한다면..., 실컷 남들을 무시하는 말을 하면서 나를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라고 말한다면..., 신앙생활에 있어서 게을대로 게으르면서 나를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라고 말한다면...., 하는 것없이 말만 늘어놓고 남을 실족케 하며 나를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라고 말한다면...이리저리 모든 일에 피해가려 하고 뒤에서 남의 하는 일들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하면서 나를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라고 말한다면...우리들은 교활한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사기에 해당합니다. 우리들은 병주고 약주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은 한 샘이 쓴물과 단물을 내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들은 지독하리만큼 다른 성도들을 괴롭게 하는 사람들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들이 진실한 말을 하면서 그래도 나를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라고 말한다면...남에 대해 친절하면서 그래도 나를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라고 격려한다면...남을 존중하면서 그래도 나를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라고 제시해준다면...열심히 섬기는 일을 하면서 그래도 나를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라고 권고한다면...남을 세워주면서 그래도 나를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라고 일러준다면... 우리들은 가장 건전한 지체들입니다. 이 교회는 가장 훌륭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교회를 옮기는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 자신의 삶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또는 사람들로부터 칭찬받기 위한 태도로 살지 마십시오. 특별히 우리들을 추종하고 인정하는 많은 사람들이 생길 때, 우리들은 더욱 그런 함정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도 없이 무례하게 함부로 살아가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한 증거를 바라보고 살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삶에 대해 증거해주실 것을 보며 성실하게 살아가면서 혹시 우리 주위에 실족한 사람들이 있다면 주님을 바라보라고 권고하십시오. 그 때 우리들은 많이 힘들어 하는 어떤 지체들을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시험이 있지만 인내할 수 있으며 문제가 생기지만 풀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