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속에 있는 사실 언어, 감정 언어

직무상 사실 언어는 많이 쓰는 직업군이 있습니다. 군인이 대표적인 직업일 것입니다.
군인은 극단적 사실 언어를 많이 구사합니다. "뒤로 돌앗!" "앞으로 갓!" "열중 쉬어!" "주목!"
모든 언어가 사실 중심이요, 말의 수식어나 형용사는 완전 제거한 채 사실적 내용 뿐인데
그것마저 압축해서 말합니다.
완전히 다이어트를 해서 말이 아주 깡마른 꼴입니다.
그리고
언어의 리듬도 없어져 버리고 오직 우렁차고 절도있는 표현만을 강조합니다.
군인은 이런 극단적 사실 언어 속에 살기 때문에 대부분 과묵하고 딱딱한 사람이 되기 쉽
습니다.
물론 군인이라도 내면적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언어속에 살다보면 대부분 부드럽고 따뜻한 감정을 잃어 버리고 딱딱함만 남는 수가 많습니다.
또한 판사, 검사, 경찰관, 이런 직업도 사실 언어를 주로 사용하는 직업군입니다. "OOO은
OO했으므로 징역 10년을 언도한다." "훔쳤어 안 훔쳤어? 똑바로 말해!" 그리고 딱딱한 보고
서, 기소장, 신문 조서, 판결문 모두가 사실 언어로 되어 있습니다.
언젠가 TV에 보니 '아빠의 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 부산 모경찰서 형사 한 분이 출연했는
데 도전 내용은 준비된 시간 안에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은 1주일 동안 산에 가서 낙엽을 밟기도 하고 책을 읽고 감정을 잡아 눈물을 흘려 보려고 무척 애를 썼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언어 속에 살다보니 눈물이 말랐던 것입니다.
아나운서도 사실 언어를 주로 사용하는 직업에 해당합니다.
아나운서들은 뉴스를 전할 때 또박또박 사실만을 그대로 전달합니다. 발음의 높낮이도 거의 없습니다. 우리가 뉴스를 듣고 마음이 뭉클해지는 경우도 거의 없고 눈물 흘리는 사람도 절대 없습니다. 풍랑으로 배가 실종됐다고 하면 당사자 가족은 통곡하지만 시청자는 혀를 차며 "참 안됐구나"라고 생각만 하지 눈물을 흘리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TV연속극에서 며느리가 구박받는 것을 보면 사실이 아닌 드라마인데도 흥분해서 시어머니를 욕하고 며느리가 불쌍하다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드라마가 감정언어로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앵커라는 직업이 생겨서 그냥 사실만 전달하지 않고 그 사실에 대해 코멘트를 하
기도 합니다. 느낀 점, 일종의 감정언어가 들어가지요.
또한 축구경기 중계 아나운서나 해설자들도 사실 언어 뿐만 아니라 감정언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슈우웃~~~ ! 꼬꼬~~골인 !
골~인 ! 국민 여러분! 골인입니다.  역시 황선홍 입니다. 우리의 태극 전사 !
드디어 월드컵에서 첫 골을 터뜨렸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벌떡 일어나 집안이 떠나
갈듯 박수를 치고 기뻐합니다. 감정 언어로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아무 감정도 없이 뉴스 전하듯이 "슛 골인 우리 선수가 한 골 넣었습니다"라고 하
면 사람들은 '아하 한 골 넣었구나.' 기쁘긴 한데 맹숭맹숭하겠지요.

언론기관의 기자들도 사실 언어속에 삽니다. 항상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라는 육하원칙에 맞추어 글을 쓰고 말하는 직업입니다.
이런 종류의 직업은 사실 언어를 많이 쓰는 직업이다 보니 사람들이 딱딱해지고 차갑게 되
고 날카롭게 되기가 쉽습니다.
그렇다고 이 직업이 문제가 있다거나 모두 그렇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사실 언어를 많이 쓰는 사람은 그렇게 되기 쉽다는 것이지요.
반대로 감정 언어를 많이 쓰는 직업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대표적 직업으로 시인을 들을 수 있습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
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
한떨기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또 감정 언어를 많이 쓰는 직업으로 가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운율로 극대화된 감정 언어인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노랫말의 모든 것이 감정 덩어리입니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발을 멈춘다" 이런 노래를 들으면 옛날을 생각하고 고향을 생각하며 마음이 고요해집니다.
그리고 유치원 선생님도 이에 해당합니다. 항상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고 동요를 부르
고 감정 언어 속에 살고있는 직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