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부활의 몸
요한일서 3:1-3
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2절을 보면, 지금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합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장래에 완성될 모습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은 의로운 영이 된 우리의 영이 영광의 부활체와 영원히 결합하는 모습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주의 인성의 완성된 모습을 친히 부활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듯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이 되심으로 우리와 동일한 참 사람이십니다. 그러나 죄가 없으신 사람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속량을 이루신 후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이 창조 때에 의도하신 완전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는 현재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또한 동시에 완성된 사람입니다. 그분은 영원히 불멸하는 영광의 몸을 입으신 참 사람이며 참 하나님이십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과 함께 영광에 들어가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영원한 영광의 상태는 우리에게는 아직 장래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우리는 우리의 머리이신 참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히 2:10).
이에 본문의 2절을 보니,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 모습 그래도 볼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분처럼 될 것입니다. 부활의 영광의 몸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영원한 몸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을 보면, 예수께서 부활의 실체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올 것이다”(요 5:28).
예수께서는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라는 말씀은 ‘전부’라는 뜻입니다. 즉, 부활하는 자는 죽었던 자들 전부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났다 죽은 자들 전부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죽든, 선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모든 죽은 자들의 몸이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육체의 성분이 지금 어디에 있든, 하늘에 있든, 바다에 있든, 땅 속에 먼지로 있든 상관없이 그들은 전부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죽은 자들은 의인이든 악인이든 경건하든 사악하든 늙은이든 젊은이든 아이든 상관없이 전부 부활할 것입니다. 바다와 땅은 한 사람도 남김없이 죽은 자들을 토해 낼 것입니다.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행 24:15).
그러므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였던 사람들 중에 부활하지 않는 자는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 가운데 아무리 작은 모양으로 존재하였을지라도, 아무리 불구였다 할지라도 사람으로 존재했던 모든 자들은 다 부활할 것입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더라.”(계 20:12).
그때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질 때, 즉 인자이신 우리 주 예수께서 심판하기 위해 임하시는 그 날에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이 다 주의 음성을 듣고 나오게 될 것입니다. 티끌로 변했던 죽은 자들의 몸이 인자의 음성을 듣고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한편,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이 땅에 살아있는 자들은 죽음을 지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곧바로 변화될 것입니다. 즉, 그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대신 갑자기 홀연히 변화할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 시공간에 존재하던 모든 인간의 몸은 전부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고전 15:51-52).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영혼이 몸에서 분리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영혼과 분리된 몸을 우리는 시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먼 훗날 주의 재림의 때에 모든 사람의 죽은 몸이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더욱이 부활할 때 일어나는 그 몸은 죽었던 그 몸으로 일어납니다. 즉, 부활의 몸은 물질적인 면에서 지금 우리가 지닌 이 몸과 연관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부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죽었던 몸이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몸의 특성은 달라질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영광의 몸으로,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은 수치의 몸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 12:2-3).
우리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서 비참한 죽음을 당하셨던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마지막 날 모든 사람 앞에서 그의 능력의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세상의 심판주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살후 1:7)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살전 4:16) 살아있는 자들은 “변화될 것이라”(고전 15:52).
주의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나팔 소리는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엄청난 소리일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어마어마한 위엄과 공포 가운데 이 세상의 심판주로 오실 것입니다. 그 광경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웅장하며 위엄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그 장면은 시내산에 강림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와 유사한 면이 있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시기 위해 시내산에 내려오십니다. 이때 큰 천둥소리와 번개와 함께 짙은 구름이 산 위에 임합니다. 그 후 주님은 불 가운데 내려오시는데 시내 산 전체가 크게 요동치고 나팔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립니다.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출 19:16-18).
마찬가지로 심판주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나팔 소리는 온 세상에 울려 퍼질 것입니다. 그 나팔 소리는 바다와 땅의 깊은 곳까지 닿을 것이며, 그 엄청난 소리에 사람들의 죽은 영혼이 원래의 자기 몸과 합쳐지면서 주 앞에 나아와 그들을 향한 마지막 판결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이 땅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경건한 자들과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 서로 엉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죽은 자들이 부활하는 때는 신자와 불신자가 서로 영원히 완벽하게 따로 구분될 것입니다. 경건한 자들은 이 땅에서 이미 그리스도의 성령의 인침을 받음으로 인해 그리스도와 연합된 복된 상태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1).
그러나 죄악 가운데 살다가 성령의 인침 없이 죽은 자들은 나팔소리와 함께 그 몸이 일어날 때 마귀를 방불케 하는 무섭고 악하고 추한 모습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보라 여호와께서 불에 둘러싸여 강림하시리니 그의 수레들은 회오리바람 같으리로다 그가 혁혁한 위세로 노여움을 나타내시며 맹렬한 화염으로 책망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불과 칼로 모든 혈육에게 심판을 베푸신즉 여호와께 죽임 당할 자가 많으리니 … (모든 혈육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사 66:15-16, 24).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기”(고전 15:20) 때문에 주님처럼 영광 가운데 부활할 것입니다(참조, 고전 15:23). 그때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기쁨 가운데 영광의 부활로 일어날 것이며 죄와 저주와 미혹으로부터 완전하게 해방된 가운데 무한한 평강과 환희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참조, 사 26:19).
그때 성도들의 부활 영광의 모습은 마치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후 결혼식에 임하는 것처럼, 영광스럽게 변화한 후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임할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의 성도들은 최고의 감동 가운데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오 죽음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있느냐? 오 무덤아, 너의 승리가 어디있느냐?”
그렇습니다. 성도들은 이 땅에 사는 동안 믿음으로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하지만 이제 부활한 후에는 부활의 승리를 직접 누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무한한 환희 가운데 이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이 땅에 있었을 때 가졌던 잠깐의 의심들과 두려움과 고통은 자취도 없이 영원히 사라지고, 영원으로 이어지는 부활의 영광 가운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주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한편, 수치스럽게 일어난 불신자들은 끔찍한 저주의 판결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판결은 그들의 몸과 영혼이 영원한 불못의 지옥에 떨어지는 판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께서는 분명하게 미리 이 사실을 알려주셨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 10:28).
오, 저는 이 자리에 계신 단 한 사람도 영원한 불못의 지옥에 떨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참으로 진심으로 간곡히 드리는 당부입니다.
“제발 불못의 지옥에 떨어지지 마세요. 그러기 위해 더 늦기 전에 진실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말씀대로 살기 바랍니다”.
하늘에서 나팔이 불 때, 불신자들은 무덤에서 나오게 되는데 이미 그들의 영혼은 음부의 지옥에서 한없는 고통을 당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나팔소리와 함께 그들의 수치스런 몸과 연합하여 일어나더니 주 하나님의 판결을 받고 그 몸과 영혼이 영원한 불못으로 떨어지다니, 이 상태를 어떻게 견디겠습니까?
악랄한 악당들이 깊은 감옥에서 끌려 나와 판결을 받고 사형을 당하는 것처럼 불신자들은 무덤에서 끌려 나와 영원한 처형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때 그들은 심판 하시는 어린양의 얼굴을 너무나 두려워한 나머지 산들과 바위들을 향해 자기들 위에 무너지라고 외칠 것입니다. 그들은 마치 도살장을 향해 가는 돼지들처럼 무덤에서 끌려 나오면서 끝없는 영원한 비명을 지를 것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 살 때 불경한 말들을 내뱉었고 향락에 빠졌으며 탐욕에 젖어 살던 자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의롭게 보이려는 종교적인 위선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였고, 겉으로는 신앙을 가진 척하였어도 진심은 자신의 영광과 욕심을 위한 거짓 신앙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고통 가운데 몸을 비틀며 가슴을 칩니다. 자신들의 처지 때문에 괴로워하며 탄식합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의 삶을 돌아보며 왜 그러한 미친 짓들을 했는지 자신을 향해 미친놈, 바보, 더러운 짐승이라 부르며 저주합니다. 그들은 과거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수십 수백 번 들었어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죄악 가운데 죽었는데 이제 그들은 죄악과 함께 다시 일어납니다. 하지만 불신자들의 영혼과 몸이 서로 오랫동안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나는 순간, 그들은 불못의 판결을 받고 불못에 떨어져 불에 타는 뱀들처럼 괴로움 가운데 온 몸과 영혼을 비틀며 무한한 고통, 영원한 고통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오, 더 이상 늦기 전에 주 예수께 나아와 죄 사함을 받기 바랍니다. 더 이상 늦기 전에 주께서 주시는 새생명을 받아 성령의 도우심과 함께 의로운 삶을 살기 바랍니다. 더 이상 늦기 전에 죄 된 삶을 정리하고 회개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사랑의 삶을 살기 바랍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얻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참된 믿음이어야 하며 참된 믿음은 반드시 행함으로 열매를 나타내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광의 부활의 몸이 얼마나 무한한 복인 줄 아십니까?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성도들의 부활체의 특성을 자세히 언급하였습니다. 사도는 성도들의 몸은 부활 때에 썩지 않고, 영광스럽고, 강할 것이며, 특히 영적인 몸으로 부활할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고전 15:42-44).
지금은 성도들의 몸도 죄로 인해 썩어지는 몸이며 병과 죽음으로 쓰러집니다. 심지어 성도가 죽을 때 그들의 몸 역시 죽음 때문에 아름답지 않으며 그들의 몸 역시 무덤에 묻힌 후 썩어 먼지가 됩니다.
하지만 부활 때에 그들은 모든 부패의 근원을 무덤 속에 남겨두고 썩지 아니할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그들의 부활체는 연약해지거나 병이 들거나 상처를 입는 일이 다시는 없을 것이며 결코 죽지 않을 것입니다. 외부의 폭력이나 내면의 고통의 요인들은 영원히 사라질 것이며, 다시는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부활의 몸은 가장 젊고 왕성한 몸으로 일어나 영원토록 유지될 것이며 지금처럼 나이로 인한 늙음과 부패는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계 20:15-21:7)
둘째로, 성도들의 부활의 몸은 영광스러운 몸입니다. 부활의 몸은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완벽한 조화를 이룰 뿐만 아니라 화려하고 찬란합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를 지닌 자도 부활 때의 성도들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몸을 지닌 자와 비교할 때 그 이름조차 꺼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마 13:43).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올 때 그의 얼굴에 눈부신 광채가 있었습니다. 공회 앞에 섰던 스데반의 얼굴은 “마치 천사의 얼굴과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부패를 벗어 던지고 해처럼 빛나는 부활한 성도들의 얼굴 및 풍채의 아름다움과 영광과 균형과 위엄은 어떠하겠습니까! 성도들의 아름다움은 그들의 얼굴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온 몸을 통해 발산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몸 전체가 그들의 주이신 구세주께서 변화산에서 보이신 영광스러운 몸처럼 변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라”(요일 3:2-3).
마태복음 17장 2절은 우리 주님의 얼굴이 해처럼 빛날 뿐만 아니라 그의 옷도 빛처럼 희었다고 증언합니다. 성도의 몸이 무덤에 누일 때 그들의 몸은 세상에 사는 동안 일어난 사고 때문에 상처가 있을 수 있고 심지어 불구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모태에서부터 선천적인 요인에 의해 기형의 몸을 지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몸이 무덤에서 일어날 때는 이러한 상처나 불구와 기형이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부활 이후 예수님의 몸에 못자국의 상처가 그대로 있었던 사실을 고려하면, 이 땅에 사는 동안 성도들이 주를 위해 받은 흉터와 상처는 부활 이후에도 그대로 보존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처들은 그들의 아름다움을 손상시키기보다 도리어 그들의 영광을 무한하게 돋보이게 할 것입니다. 즉, 이 땅에서 복음을 위해 당한 고난과 상처는 영원한 영광으로 보답될 것입니다.
아무튼, 그때가 되면 우리의 눈은 침침하지 않을 것이며, 절뚝거리지 않을 것이며, 늙지 않을 것이며, 병들지 않을 것입니다. 무덤에서 썩은 우리의 더러운 몸은 부활과 함께 완전하고 아름다운 균형 있는 몸으로 다시 일어나 영원한 강건함과 생동력으로 힘차고 즐겁게 감사함으로 사랑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성도의 부활의 몸은 많은 능력을 가진 강한 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몸이라도 점점 노쇠하여지다가 어느새 기력을 잃고 소모되더니 반드시 죽게 됩니다. 따라서 아무리 강한 몸이라도 현재의 몸은 죽음을 향하는 연약한 몸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성도들 중에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연약한 몸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스가랴 12장 8절을 보면, “그 중에 약한 자가 그 날에는 다윗 같겠고 다윗의 족속은 하나님 같을 것”(슥 12:8)이라고 언급합니다. 하나님의 엄중한 말씀에 의하면 성도는 부활 때에 지금보다 수천 수만 배 강하여질 것입니다. 영광을 입은 부활체의 힘은 분명히 엄청날 것인데, 이는 차고 넘치는 영원한 영광을 감당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태양보다 더 밝은 새 예루살렘의 밝고 휘황찬란한 영광을 보아야 하는데 우리의 육신의 눈이 얼마나 강하여야 하겠습니까! 또한 인자이신 그리스도의 초월하는 영광과 밝음을 계속 보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우리의 심장과 맥박은 얼마나 강하여야 하겠습니까! 썩을 심장이 어떻게 차고 넘치는 감격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썩을 육체가 어떻게 무한한 아름다움과 영광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썩을 육체가 어떻게 하늘의 황홀함으로 가득 찬 영혼과 연합하여 영원히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썩을 육체는 영원한 영광 앞에 무너질 것이며, 하늘의 충만한 기쁨은 먼지로 만들어진 육체 그릇을 가루로 만들어 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한하고 영원한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부활의 몸 역시 무한하게 강한 몸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분명하게 현재의 연약한 “혈과 육”으로는 영원하고 찬란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선포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전 15:50).
현재는 하늘의 주께서 자비 가운데 사람들이 그분의 보좌를 보지 못하도록 감추시고 그의 구름을 보좌 위에 펴셨습니다(욥 26:9). 이는 죽을 육체들이 주의 보좌로부터 나오는 영광의 광채를 보고 기절하여 죽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그 날이 오면 베일이 치워질 것이고, 우리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기쁨 가운데 주의 보좌를 우리의 눈으로 직접 보게 될 것입니다.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계 22:3-4).
또한 밤이나 낮이나 쉼도 없이 영원히 하늘의 성전에 거하면서 조금도 피곤함이 없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외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성도들의 몸은 과연 얼마나 강하여야겠습니까? 그러므로 영광을 얻은 부활체는 육체의 피곤이나 연약함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주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그리스도와 연합한 우리의 몸을 통해 여러 모양으로 한계를 갖고 나타날 것입니다.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계 21:22-23).
마지막으로 성경은 성도의 부활의 몸은 신령한 몸이라고 말합니다. 신령한 몸이란 성도의 몸이 영으로 바뀐다는 뜻이 아니라 영이 지닌 특징과 장점을 몸도 지니게 된다는 뜻입니다. 부활의 몸은 영혼의 지시를 완벽하게 순종하고 따르며, 또한 영혼에 의해 힘을 얻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영혼은 한량없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하기 때문에 몸의 활동을 막는 장애가 더 이상 없을 것이며 영혼을 거스르는 동물적인 욕구 역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몸을 쳐서 복종시킬 필요가 없을 것이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 일도 사라질 것입니다.
지금 이 땅의 삶은 몸의 연약함 때문에 영혼이 심히 곤고합니다. 육체로부터 영혼이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라고 탄식합니다. 신학 용어로 표현한다면 현재 우리의 영혼은 육체의 정욕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활의 몸은 영적인 몸으로서 영혼의 활동과 완전하게 연합될 것입니다. 그 때 부활의 몸은 마치 영혼처럼 하늘과 더 많이 연관되어 한없이 자유로울 것입니다.
나아가 부활의 몸은 더 이상 삶을 유지하기 위한 생필품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즉, 음식이나 옷 등을 ‘반드시’ 필요로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계 7:16).
그때 성도들은 음식과 음료와 옷이 없을지라도 강할 것이며, 완전한 건강 가운데 있을 것이기에 약도 필요 없을 것입니다. 부활의 몸은 늘 힘이 솟고 원기가 왕성하기 때문에 전혀 잠을 자지 않아도 늘 성전에서 밤낮으로 주를 섬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게으름이라는 것은 새하늘과 새땅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전혀 피곤하지 않을 것입니다(참조, 계7:15).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사랑하는 여러분!
이처럼 부활의 몸은 늘 최상의 상태이며 영혼처럼 날렵하고 활동적입니다. 지금의 몸은 둔하고 무겁지만, 부활의 몸은 최상의 상태에서 늘 새롭습니다. 그때 성도들에게는 마음을 무겁게 하고 영혼을 낙심시키는 우울증과 같은 증상이 결코 없을 것입니다. 아무튼 그 날이 되면 부활의 몸이 어떠할지 우리 모두가 자명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부활의 몸은 ‘영원한’ 영광의 영원한 몸이라는 사실입니다. 영원하다는 것은 제거될 수 없는 불멸의 존재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부활의 몸은 영원한 승리가 보장되며, 영원한 건강, 영원한 만족, 영원한 일치, 영원한 감사와 사랑이 보장된 영광의 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주 하나님과 영원히 거할 수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흠이 있다면 그들이 영원히 거하는 새하늘과 새땅이 영원할 수 없습니다. 그 몸이 조금이라도 약해지거나 썩거나 흠이 있다면 영원히 새하늘과 새땅에서 거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영원한 것처럼 우리의 몸 역시 영광 가운데 영원할 것입니다. 그것이 성도의 부활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본문 3절은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간절히 호소합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3).
베드로 역시 우리가 부활의 몸을 입고 거하게 될 새하늘과 새땅을 바라보며 소망하는 자는 깨끗한 삶을 살라고 당부합니다.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 3:13-14).
사랑하는 여러분!
이처럼 부활의 소망을 가진 성도의 첫째 사명은 깨끗함입니다. 깨끗함은 다른 말로 하면 거룩함입니다. 이것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은 복음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요한일서는 계속 죄의 상태에 머무는 자는 결코 빛의 사람이 아니라고 뚜렷하게 선포합니다. 사실 요한일서는 이러한 부활의 영광에 들어가는 길은 좁은 길이라고 알려줍니다. 이에 예수께서도 부활의 영광에 들어가는 구원의 문은 좁은 문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
23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그렇도다)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27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눅 13:23-27)
[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마 7:13-14, 19)
사실 요한일서 전체를 읽어보면 사도 요한은 부활의 영광에 들어가는 것을 깨끗함으로만 묘사하지 않습니다. 깨끗하여진 자들은 진리를 행함으로 의로울 것을 요구하고 있고, 의를 이루는 자들은 그 마음에 항상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나타낼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요구는 생명이 없는 자들은 이룰 수 없는 요구라고 알려주며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는지를 점검할 것을 당부합니다. 만일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없다면 철저하게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3절의 깨끗함은 진리와 의와 사랑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들을 이루기 위해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함을 알려주고, 성령의 역사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맞물려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신자들의 특징은 결국 영원한 새하늘과 새땅의 부활의 영광의 상태를 미리 앞당겨 나타내는 자들인데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랑’입니다.
[
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5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6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일 4:4-10)
이렇게 사랑으로 완성되는 깨끗함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은 언제든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설 자신을 갖게 됩니다.
[
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17-19)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기 바랍니다. 우리가 행하는 의의 궁극적인 목적은 오직 사랑입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 13:8-10).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분은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사람이 되심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의 속죄를 감당하시고 부활 승천하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교통한다고 말하면서 여전히 어두움 가운데 살고 있다면, 우리는 거짓말쟁이며 진리를 따라 살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시기에 우리 역시 빛 가운데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살면 우리 성도들은 서로 하나님 안에서 교제하게 됩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부활하셔서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주께서 하늘에 앉으심은 만유의 주가 되셔서 다스림을 의미합니다. 특히 주의 영으로 거듭난 자들 안에 성령으로 와 계십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연합한 상태에 있습니다. 이는 내 존재의 가장 깊은 영역인 영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계셔서 그분과 연합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우주 가운데 신자와 그리스도의 관계보다 더 깊은 것은 없습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보다, 심지어 내 영과 혼의 관계보다 더 깊은 관계가 있다면 내 영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과의 관계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그분의 영이 우리 영과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의 모든 스치는 생각까지 아시며 여러분의 모든 아픔과 괴로움을 완전하게 다 아십니다. 우리의 죄로 인한 자책도 아시고, 죄성에 대해서도 너무나 잘 아십니다. 그 이유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우리 안에 와 계시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리스도는 주의 영이신 성령으로 우리가 죄를 짓지 않도록 도와 주십니다. 심지어 우리가 죄를 범할지라도 회개하는 마음을 주시고 용서하여 주시고 다시 일으켜 세우십니다. 그것이 바로 중보자 그리스도로서의 대제사장의 역할입니다.
[
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2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4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6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요일 2:1-6)
그러므로 성경에서 배운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늘 기도하기 바랍니다. 그 가르침 안에서 살아갈 때, 여러분은 아들과 아버지 안에 머물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그분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은 결코 더 이상 계속 죄를 짓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 신자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계속하여 죄를 짓고 살 수 없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누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누가 마귀의 자녀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율법에 따라 행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그리고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우리는 죽음을 벗어나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그 생명은 그리스도처럼 사랑하는 생명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형제들을 서로 사랑함으로써 그 생명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처럼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교훈을 통해 몇 가지를 상고해 보았습니다. 부활의 교훈은 신자들에게는 큰 위로와 기쁨을 무한하게 줍니다. 혹시 인생 가운데 경건한 가족들과 친구들을 먼저 하늘로 보내고 슬픔의 자리에 있게 되면 부활을 생각하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기를”(살전 4:13) 바랍니다.
약하고 아픈 몸 때문에 낙심하고 있습니까? 내면의 속사람을 더욱 가꾸기 바랍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이는 우리의 몸이 완전하게 건강하여질 날이 반드시 오기 때문입니다.
현재 여러분의 몸이 못생기거나 보잘 것 없거나 또는 불구입니까? 그러나 여러분의 영혼 안에는 그리스도로 인한 생명의 영광이 있습니까? 그러면 어느 날 여러분 안에 있는 영광은 영원한 외적인 영광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즉, 주님 오실 때 여러분의 몸은 영광스럽고 아름답고 준수하고 멋지게 균형 잡힌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성도가 무덤에 묻힐 때는 흉한 몸도 있고 불구인 몸도 있지만, 그들이 부활할 때는 그러한 연약함이 완전하게 사라질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짧은 인생을 마치고 곧 죽음을 지날 것이며 이 몸은 땅에 묻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마침내 부활하여 영광스럽게 나올 것입니다. 이 얼마나 든든한 위로입니까!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소망입니까! 그러므로 성경은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 4:18)고 권면합니다.
반면, 모든 불신자들은 오늘 말씀과 함께 경고를 받기 바랍니다. 혹시 이 자리에 아직 거듭나지 않은 분이 있다면 불신자의 운명이 어떠한지 확인하기 바랍니다.
혹시 이성 없는 짐승들처럼 죽음에 대해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하고 이 짧은 소중한 인생을 쓸데없는 썩어질 것들에 다 탕진해 버리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종들이 죽음 후에 어떻게 될지 분명하게 선포하여주었지만 전혀 심각하게 여기지도 않으며 죽음 이후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까? 세상을 떠나면 내 영혼이 어디로 갈지, 또한 부활의 아침에 나의 시체는 어떻게 될지 알고 있습니까? 불신자의 몸은 죄와 함께 흙에 묻혔다가 다시 일어날 때 가장 사악하고 흉측하고 비참한 몸으로 일어날 것이며 또한 영원한 불못으로 떨어진다는 사실을 이 시간 마음에 새기기 바랍니다.
이 자리에 구원의 확신이 없는 분들이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의인의 부활에 참여하고자 한다면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분과 연합하기 바랍니다. 죄로부터 일어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바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요 11:25). 만일 그대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성령의 전이 된다면, 그대는 반드시 영광 가운데 부활할 것입니다. 지금 구원의 방주에 올라타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대는 기쁨 가운데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기 바랍니다. 무거운 죄짐을 벗어 던지고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전부 내다버리기 바랍니다.
신자들이여! 부활과 심판의 날을 결코 잊지 말고 부끄러운 롯처럼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더욱 정신을 차리고 깨어서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기 바랍니다.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때 그 영광은 별과 별들의 영광이 다르고 별과 달의 영광이 다르고 달과 태양의 영광이 다른 것처럼 그 영광의 차이가 한없이 클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주의 심판과 함께 정해지는 영광은 영원한 영광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이 자리에서 오늘도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리는 모든 분들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확인하며 인생을 마치는 그날까지 부활의 소망으로 사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