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생(蘇生)하는 것과 부활(復活)하는 것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것처럼 일시적으로 숨이 끊어졌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소생이라고 말을 합니다. 이에 반해 부활은 완전한 삶이요, 다시 살아서 영원히 죽지 않는 상태 즉 영원한 생명을 의미합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 가운데는 부활에 대한 확신이 희미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부활에 대한 교리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성도들이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35절) 라고 바울에게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질문에 대해서 바울은 세상에 있는 인간, 동·식물, 우주에 빗대어서 몇 가지 원리를 이야기한 후에 42절에 보면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라고 강조하면서 부활에 대해서 네 가지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바울의 말에 따르면, 부활의 실체는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로, 부활은 썩지 아니할 몸으로 다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42절 하반절에 보면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라고 했습니다. 우리 몸은 조금이라도 병균이 들어가면 몸이 썩게 됩니다. 이렇게 썩게 될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부활의 영광으로 덧씌워주실 때 우리는 절대로 썩지 않는 몸으로 다시 살게 됩니다. 그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수준 높게, 우리가 기도하고 소원하는 그 모습으로 다시금 살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부활은 영광스러운 몸으로 다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43절 상반절에 보면 "욕된 것(천한 것, 수치스런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죄를 짓기 쉽고 깨어지기 쉬운 연약함을 안고 살아갑니다. 죄가 우리 몸에 항상 같이 있습니다.
이런 욕된 것, 영광스럽지 못한 몸을 나중에 주님께서 부활의 은혜로 함께 해주실 때 하나님의 자녀답게 영광스런 몸으로 다시 살게 되는 부활의 본체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처럼 우리의 부활도 영광스럽고 복되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부활은 강한 몸(Powerful body)으로 다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43절 하반절에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라고 했습니다. 간혹 전 세계가 사스나 메르스와 같은 특이한 질병으로 인해 공포에 떨게 될 때가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자신의 육체도 통제(control)하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부활의 영광으로 우리 몸을 다시 덧씌워 주실 때는 그 어떤 것도 도전할 수 없고 꺾을 수 없는 "강한 것으로(in power)" 우리가 다시금 태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부활은 신령한 몸(Spiritual body)으로 다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44절에 보면 "육의 몸(natural body: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자연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spiritual body:영적인 존재)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육의 몸은 언젠가는 땅에 묻히게 됩니다. "육의 몸으로 심고" 하는 말씀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에게 영적으로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잘못된 철학 중의 하나가 죽으면 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육체의 죽음 이후에 우리를 영적인 몸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시공간의 개념이 없고(요한복음20:19), 음식을 안 먹어도 배고프지 않는 영광스런 몸, 신령한 몸으로 우리가 다시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부활의 영광에 동참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45절에 보면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약속대로 예수님이 우리와 영원토록 동행해주십니다(마태복음28:20). 그러므로 예수님의 생명을 가진 자들은 비록 육신의 죽음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금 태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생명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과 믿음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영광스러운 부활을 경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활신앙을 가진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첫째로, 부활신앙을 가진 성도는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내일 일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자녀들과 배우자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도 없습니다. 아무리 사랑해도 내 능력밖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활을 통해 우리를 영광스럽게 해주신다는 사실을 믿을 때에 내가 살아보지 않은 미래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주신다고 믿을 수 있습니다.
게놈지도를 완성한 과학자들처럼 하나님께서 직접 계획하시고 직접 행하시는 "부활프로젝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기로 작정하시고 그분의 시간표와 방법대로 모든 것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인답게 성령을 통해서 믿음을 주시고 이후의 모든 삶도 하나님의 방법대로 다스리면서 우리를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과학자들의 말에 신빙성을 가진다면 과학자 중의 최고의 과학자, 우주만물을 직접 설계하시고 창조하신 하나님의 이론은 우리가 마땅히 신뢰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전 15:3-4에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도, 고난을 당하게 하신 것도, 부활하게 하신 것도 다 "성경대로"였다면, 이 약속의 말씀들이 예수님께 그대로 유효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유효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불확실하다 할지라도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프로젝트가 이미 완성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서 다스리도록 다 내어드려야 합니다.
둘째로, 부활 신앙을 가진 성도는 모든 종류의 두려움과 억압에서 참된 자유와 평안을 누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처음으로 해주신 말씀이 "두려워하지 말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두려움은 결핍에서 찾아옵니다. 돈, 지식, 건강, 정보, 확신, 이런 모든 것이 부족할 때 사람들은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28:10)고 말씀하신 주님의 약속과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린도전서15:22b)고 하는 부활의 소망을 가졌기 때문에 조금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활신앙은 우리 삶의 현장을 두려움에서 평안으로, 불신앙에서 신앙으로 바꾸어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특별히 죽음에 대한 시각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어줍니다.
바울은 주님을 만나고 난 후에 그의 죽음관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빌 1:20—21에 보면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어떤 존재도 죽음에 대해서 승리할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 부활에 대한 약속을 받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언제든지 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가 있습니다.
셋째로, 부활신앙을 가진 성도는 삶의 목적과 방향과 태도가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에게 신앙의 문제는 삶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32절에 보면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만약에 부활이 없다면 윤리나 체면을 다 무시하고 그냥 본능이 이끄는 대로 내 마음대로 살면 됩니다. 그러나 부활을 믿는 우리는 부활 이후의 세계가 분명히 있기 때문에 34절에 보면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있는 은행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에서 발행한 부활이라고 하는 보증수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는 일에 더욱 더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부활의 영광을 덧입혀 주실 때 우리는 절대로 썩지 아니하고, 영광스럽고, 강하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게 될 것입니다.
이런 부활신앙을 가진 우리는 부활을 통해서 영광스러운 미래를 확신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부활신앙으로 모든 종류의 두려움과 억압에서 해방되어 참된 자유와 평안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부활이후의 삶을 믿는 자답게 깨어서 의를 행하면서 주님의 일에 더욱 더 힘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부활을 이미 가진 자로서 남은 삶을 부활의 소망과 능력으로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라는 시를 소개하고 마치겠습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 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우리에게 죽음은 조금도 이상한 것이 아니고, 두려운 것도 아닙니다. 죽음을 준비하지 않고 사는 것이 더 이상한 것이고 그것이 우리에게 정말로 두려운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부활이라고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영원히 산다는 것입니다. 그곳으로 이사 가기 전에... 내가 이 땅에 살아 있는 동안에 잘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베풀어주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칭찬받을 일을 하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구원의 열쇠를 꼭 준비해서 다 함께 그곳에 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