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위를 보며 사는 인생

본문 : 골로새서 3:1~11

설교 : 홍문수 목사

 

옛날 미국에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길을 가다 5달러짜리 지폐를 주웠습니다. 당시에는 제법 큰돈이었습니다. 공짜로 돈이 생기니까 너무 좋았습니다. 계속 그런 일이 있을까 싶어 땅만 보고 다녔습니다. 나중에는 그게 습관이 됐습니다. 그가 평생 땅만 보며 주운 것을 계산해 보니 이랬습니다. 단추 29천여 개, 머리핀 54천여 개, 동전 수천 개, 그 외에 자질구레한 것들을 많이 주웠습니다. 그는 땅만 보느라 푸른 하늘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넝마주이로 인생을 마감하게 됐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를 통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인생에서 무엇에 시선을 두고 사느냐 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3:1() “ ... 위의 것을 찾으라(set your hearts on things above-NIV)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여기서 는 물리적 방향이 아니라 영적인 방향으로 천국을 가리킵니다. ‘찾으라는 말은 추구한다는 말인데, NIV성경 영어 번역을 직역하면 마음을 천국에 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으로 이 세상 말고 저 를 바라보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위를 보며 사는 인생입니다.

 

그런데 분주하고 복잡한 세상에 살다 보면 그리스도인들조차 를 바라보지 못한 채 엄벙덤벙 살아가기 일쑤입니다. 이제 며칠 후면 추석 명절입니다. 여러분은 명절의 유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랜 만에 가족과 친지를 만나 정담을 나누고 회포를 푸는 것입니까? 조상을 기리며 성묘하는 것입니까? 맞죠. 그런데 금년에는 코로나19로 당국에서 귀성도 하지 말고 성묘도 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어떤 지자체에서는 현수막을 내걸고 고향에 오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수막까지 등장했습니다. “ 효자는 니다!” 노래 제목 불효자는 웁니다를 패러디한 말이죠. 웃어야 할지 울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귀성을 하든지 집에 있든지 이 한 가지는 놓치지 말자는 겁니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 세상만 바라보며 살았다면 이런 기회에 인생을 돌아보고 위를 바라보자! 천국을 바라보자! 이겁니다. 물론 명절이나 휴가 때만 위를 보며 살자는 말은 아닙니다. 이를 계기로 계속 위를 바라보며 살면 정말 좋겠습니다. 아무쪼록 이 세상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위를 바라보며 풍성한 축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1] 위를 보며 살아야 할 이유 : 천국 백성이 되었기에

 

먼저 우리가 위를 바라보며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피조물로 늘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도록 창조됐습니다. 그래서 헬라어로 인간이 안쓰로포스’(ἄνθρωπος)인데 위를 바라보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짐승은 땅을 바라보지만 인간은 하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배반하고 타락함으로 하나님 대신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안쓰로포스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게 되면서 안쓰러운 자가 됐다!

다행히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대속하는 구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우리 대신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님과 함께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 ” 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이렇게 해서 우리는 믿음으로 천국 백성이 됐습니다. 따라서 천국을 바라보며 사는 게 마땅합니다. 바울은 빌3:20에서 이렇게 증거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우리는 천국 시민권자 즉 천국 백성입니다. 예수님을 기다린다는 말은 재림을 고대하는 것신데, 결국 하나님 보좌 우편의 예수님을 계속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인은 위를 바라보며 사는 인생입니다.

 

[2] 위를 보며 사는 인생 : 천국의 소망, 천국의 인격, 천국의 가치관

 

그러면 구체적으로 위를 바라보며 산다는 게 무엇일까요? 3 가지로 요약해 봅니다. 천국의 소망을 갖고 사는 것, 천국의 인격을 이루는 것, 그리고 천국의 가치관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씩 살펴보시죠.

 

1) 천국의 소망 :

 

첫째, 위를 보며 사는 인생은 천국의 소망을 갖고 살아갑니다. 이 세상에 소망을 두면 반드시 실망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끝은 멸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만 바라보면 결국에는 죽음이고, 그 후엔 영원한 멸망입니다. 14:12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자신은 좋다고 세상만 바라보며 살지만 결국은 영원한 사망에 이른다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습니까? 14:32 “악인은 그의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죽어도 천국입니다. 우리의 종착지는 천국이기에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4절을 보십시오. 3: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우리는 장차 천국에 들어갈 것이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영광스럽게 부활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의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회피하지도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죽음을 회피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면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작년 가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부산 김해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김포공항으로 향하던 중 기체에 고장이 나서 회항하게 됐습니다. 기장이 비상 착륙을 할지도 모른다는 안내 방송을 하자 승객들은 사색이 됐습니다. 공포의 40분이었습니다. 사고가 나면 죽을 수도 있는데 얼마나 무서웠을까! 어떤 사람은 흐느꼈고, 어떤 사람은 공포에 질려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하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갑자기 눈앞에 닥친 죽음의 순간이기에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천국의 소망이 있기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겁니다.

 

이게 바로 믿음의 사람과 세상 사람이 다른 점입니다. 평소에는 천국의 소망을 가진 게 별 게 아닌 것 같지만 죽음의 순간이 가까워지면 완전 달라집니다. 기독교계의 베스트셀러 작가 맥스 루케이도(Max Lucado) 목사의 간증입니다. 그에게 절친한 의사 친구가 있었는데 한 병원에서 35년 간 봉직할 정도로 신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가 암에 걸려 수술을 받았는데 후유증으로 말을 못하게 됩니다. 가족들은 특수 기기로 말을 알아들으려고 시도했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막내아들이 예감이 이상해서 기기에 귀를 대고 들었는데 소리가 들렸습니다. 가족의 이름을 부르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예수님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런 기도였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당신의 뜻이라면 이제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저는 준비가 됐습니다.” 그는 이 기도를 드리고 얼마 후 평안한 모습을 소천했다고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천국의 소망을 품고 살아갑니까? 우리는 이미 천국 백성이 되어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지듯 보호받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세상에 두려울 게 없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언젠가 죽음의 순간이 닥치겠지만 소망 가운데 마음을 다잡고 평안히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추석을 맞이해서 산소에 성묘를 갔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돌아가려고 하는 순간 엄마가 어린 딸에게 말했습니다. “, 이제 가야 되니까 할아버지께 인사드려라!” 그러자 그 아이가 산소에 대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오래 사세요!” 온 가족이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그 아이 말이 맞죠. 그리스도인은 죽어도 천국에서, 그리고 장차 부활해서 영원히 사는 것이니 말입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은 예수 십자가 대속으로 천국 백성이 되었기에 항상 천국의 소망을 품고 당당히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 천국의 인격 :

 

둘째, 위를 보며 사는 인생은 예수님을 닮은 천국의 인격을 이루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셔서 천국의 권속으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천국의 로열패밀리 멤버인 셈입니다. 바울이 그 모습을 롬8:29에서 롬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하나님은 아버지이고 예수님은 맏아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예수님의 동생들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을 닮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라 육안으로 볼 수 없기에 인간으로 오셔서 모델이 되어 주셔서 예수님을 보며 닮아갈 수 있습니다. 4:15 말씀입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이런 변화를 가리켜 성화(聖化, glorification)라고 합니다. 성화는 마치 옷을 갈아입는 것과 같습니다. 더러운 옷을 벗어버리고 깨끗한 새 옷을 입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먼저 옛사람의 모습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3:8~9 “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예수님을 믿기 전에 있던 모든 추하고 부정한 모습들(분노, 악의, 비방, 더러운 말, 거짓말 등)을 다 벗으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단호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을 닮은 새사람의 모습을 입어야 합니다. 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the new self, which is being renewed-NIV)” ‘새롭게 하심을 입는다는 말은 헬라어 원문 혹은 영어성경으로 보면 수동태 현재분사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수동태니까 나 자신의 노력으로만 되는 게 아니고 성령의 역사에 의해 성화가 이뤄짐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분사형이니까 단번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점진적인 변화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화는 다른 말로 바꾸면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5:22~23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9 가지 열매가 나오는데 한 인격 안에 있는 다양한 특성의 성품을 가리킵니다. 곧 예수님의 인격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며 그 모습을 그대로 닮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천국 백성이기에 거룩해야 합니다. ‘거룩이란 말은 구별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의 인격은 세상 사람들과 차별성을 보여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안타까운 말을 듣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거기서 거기다! 교인들이 더하다! 특히 코로나10 사태의 와중에 요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예수님을 더욱 더 닮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이 기뻐하시고, 그런 모습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 구주되심을 증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번은 제가 기독실업인회 모임에 설교하러 갔다가 그곳에 참석한 귀한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육군논산훈련소 소장을 역임하고 퇴역한 장성(구재서 소장)입니다. 장병들에게 본이 되고 35만 훈련병들에게 올바른 인성교육과 인문학교육을 시킴으로 강한 용사를 육성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9 대한민국을 빛낸 한국인상을 수상한 분입니다. 인성교육과 인문학교육의 내용은 알고 보니까 성경과 탈무드 교육입니다. 군대에서 그게 가능한가 싶은데 그리스도인으로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신뢰를 받으니까 그런 교육이 통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으로부터 이런 간증도 들었습니다. 그분이 훈련소장으로 재직할 때 전국 기독실업인 수련회를 논산훈련소에서 개최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 기독실업인회 측에서 훈련소교회당 건축에 기여한 데 감사를 표하는 차원에서 훈련이 없는 시기에 사용허가를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3천 명 참가자들이 내무반에서 불편하게 생활하면서도 얼마나 질서 있게 사용했는지 도우미로 배치됐던 장병들이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칭찬했다고 합니다. “이분들 같으면 1년 내내 수련회를 해도 좋겠습니다.” 그런 간증을 들으면서 흐뭇했습니다. 이런 게 바로 천국의 인격인 겁니다.

 

우리가 천국 백성으로서 예수님을 닮은 인격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면 얼마든지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도 기쁘고 주님도 영광을 받으실 겁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육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모습과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를 통해 보게 될 겁니다. 이게 바로 증인의 삶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천국 백성답게 위를 바라보며 예수님을 닮은 인격을 이루며 승리의 인생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3) 천국의 가치관 :

 

셋째, 위를 보며 사는 인생은 천국의 가치관을 품고 살아갑니다. 본문 2절을 보시죠. 3: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땅의 것은 세속적인 가치를 의미합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라는 말은 천국의 가치를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5()을 보십시오. 3:5 “ ...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탐심은 세속적인 가치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하나님에서 멀어지고 세상 가운데 파묻히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을 배반하게 됩니다. 그래서 탐심이 곧 우상숭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아무리 좋다 해도 결국은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벧전1: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인생이 풀과 같은데 그 가운데 부귀영화가 있어봤자 풀에 달린 꽃과 같다는 겁니다. 화무십일홍이란 말처럼 오래 가지 못합니다. 금세 사라져 버립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부귀영화, 권세, 성공 등은 영원한 게 아닙니다. 잠시 있다가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갖고 있을 때 부지런히 천국의 영원한 가치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허무해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한 후에 허무감을 느끼지 않습니까! 그게 세상의 가치를 영원한 가치로 전환시키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을 보면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형제가 재산다툼을 벌이던 중에 동생이 예수님을 찾아와 도움을 요청합니다. 예수님은 탐심이나 채워주시는 분이 아닌데 착각한 겁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탐심을 물리치라! 형제 둘 다 똑같다는 겁니다. 일깨워 주기 위해 그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어느 부자가 대농이었는데 농사를 크게 지어 소출이 너무 많았습니다. 창고를 증축하고 가득 채워놓습니다. 그리고 한갓진 마음으로 독백합니다. 이제 평안히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지만 그에게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죠? 12:20~21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그 부자는 세상에서 많은 소유를 얻고 성공했는지 모르지만 영원한 가치를 남기지 못했습니다. 그 영혼은 또 어디로 갈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 부요하지 못하다는 것은 영원한 천국 가치를 남긴 게 없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보니까 그는 부자가 아니라 가난뱅이에 불과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짜 부자는 영원한 가치를 많이 남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서도 계속 칭찬받을 만한 가치, 천국에서 영원히 자랑스러워할 만한 가치가 중요합니다. 그런 가치를 추구하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무조건 무엇’(what)을 추구합니다. 소유, 성공, 출세, 권세, 지위, 명예 등.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서’(for what)입니다. 그런 것들을 무엇을 위해 선용하느냐 이겁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권면합니다.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무슨 말이니까? 많은 소유 자체가, 높은 지위 자체가, 큰 권세 자체가 영원한 가치가 아닙니다. 많든 적든, 작든 크든, 높든 낮든 그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선용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영원한 가치요 천국의 가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치를 모르니까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함부로 삽니다. 수년 전 모 사회단체에서 이런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습니다. 10억 원을 주면 위법 행위를 할 뜻이 있습니까? 그렇다고 답한 사람이 25%나 됐습니다. 돈만 생기면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겁니다. 실제 상황에서는 눈앞의 돈에 미혹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지 모릅니다. 그들은 가치관이 결핍된 사람들입니다. 천국을 모르면 이렇게 되기 십상입니다.

 

한동대 총장을 지낸 고 김영길 장로님이 생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배워서 남 주냐? 하지 말고 배워서 남 주자!” 배워서 성공하고 그것을 갖고 자기 자신만 쓰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남을 위해 선용할 때 영원한 가치로 전환됩니다. 그는 세계적인 과학자로 부귀영화가 눈앞에 있었지만 천국의 가치관으로 청년을 키우겠다는 일념으로 한동대 초기 어려움을 불사하고 뛰어들었습니다. 그에게는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을 갖고 있기에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입을 것도 있어야 하지만 적어도 천국을 생각한다면 그런 것들이 인생의 전부가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비록 평범한 위치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영원한 가치를 남기는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몇 달 전 미국 아이다호(Idaho)주 한 도시(Nampa)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아마존의 여성 택배기사(Monica Salinas)가 한 가정(The Pearson Family)에 연속적으로 배송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기 엄마가 감사 쪽지를 문 앞에 붙여두었고 그 가정의 사연을 소개했습니다. 그 가정에는 9개월 된 아기가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고 있고 음식 섭취 장애가 있어 특수한 의료용품을 계속 주문했습니다. 코로나19 상황으로 혹시라도 아기에게 해가 될까봐 외출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어서 주문을 많이 한다고 했습니다. 택배기사는 그 가정의 딱한 사연을 알게 됩니다. 그 후부터 그 기사는 배송하면서 문 앞에 상자를 두고 돌아갈 때마다 그 집을 향해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아기의 부모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어느 날 CCTV를 확인하다 그 모습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큰 감동을 받은 아기 엄마가 그 영상과 사연을 SNS에 올렸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겁니다. 그 택배 기사는 평소에도 자신의 일에 가치를 부여하며 성심을 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고객의 어려운 사정을 듣고 기도할 정도로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평범하지만 이런 인생이야말로 영원한 천국의 가치를 추구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성공하고 많은 소유를 쌓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가치가 중요합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은 천국을 바라보며 무엇을 하든 영원한 가치를 위해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과연 무엇을 바라보며 살고 계십니까? 혹시 분주한 일상 속에서 세상만 바라보며 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 십자가 구속된 천국 백성입니다. 우리의 본향은 천국입니다. 그러므로 위를 바라보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더 복되고 더 아름다운 인생으로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