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

(호 10:1-3)

 

   우리 속담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하룻강아지는 한 살 배기 강아지를 뜻하는 하릅강아지라는 말이 변형된 말입니다. 그리고 다 아시는 대로 범은 호랑이를 뜻하는 한자어입니다.그래서 글자 그대로의 뜻은 호랑이를 모르는 어린 강아지가 겁 없이 호랑이를 보고 마구 짖어댄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속담에 담긴 뜻은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이 겁 없이 감히 상대할 수 없는 사람에게 덤벼들거나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에 무턱대고 뛰어드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영적인 면에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일들이 있어왔습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한 사람들, 하나님이 죽었다고 선언한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이 선하지 않다고 강변한 사람들이 있어왔습니다. 그러던 중에 2000년대에 들어와서 소위 신무신론주의자들이 나타나서 세상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기존 무신론자들을 이론적으로 무장시키고, 심지어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이 신무신론주의자들의 대표주자가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라는 사람입니다. 그가 쓴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은 유독 우리나라에서 가장 주목을 받아왔고, 수십만 권이나 팔려나갔습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 반기독교정서가 들불처럼 번져가는 시기와 맞물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도킨스는 이 책에서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신에 대한 신앙은 망상이며 그것도 유해한 망상일 뿐이다” 그리고 “과학이 신이 없음을 증명했음으로 믿음은 이제 일종의 정신병 같은 것이다”라고까지 말했습니다. 한 마디로 신은 없는데 마치 어린아이들이 산타클로스를 믿는 것처럼 정신병자와 같은 신자들이 망상 속에서 신을 믿고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오늘 이 시대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과학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버드대학의 천문학자 오웬 진저리치(Owen Gingerich)는 그의 저서 [신의 우주]에서 “우주는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창조되었는데, 이러한 믿음은 과학체계를 방해하지 않는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을 대표하는 과학자로 게놈프로젝트의 총책임자요 미국립보건원장인 프랜시스 콜린스(Francis Collins)는 [신의 언어]라는 책에서 자기가 무신론자였는데 기독교신앙을 가지게 됐다고 간증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과학은 신에 위협받지 않는다. 발전한다. 신도 결코 과학에 위협받지 않는다. 신은 과학을 가능케 했다.” “자연의 경이와 질서는 전통적인 기독교 창조의 하나님을 가리킨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과학자라고 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깊이 있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에 대해 신앙고백을 하는 과학자들도 참 많습니다. 그러니까 리차드 도킨스와 같은 신무신론자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에 대해 무지한 것뿐입니다. 마치 하룻강아지가 범에 대해 잘 몰라서 범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저들이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서 무신론자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잠잠하고 있던 무신론자들이 소리치며 기독교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물이 바다를 덮은 것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풍조가 세상을 뒤덮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더 놀라운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어온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이야 하나님을 몰라서 그렇다고 치더라도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착각

 

   본문 1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호세아는 이스라엘을 포도나무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성경 여러 곳에 나오는 것처럼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심으신 포도나무로 비유한 것입니다.

 

   그런데 호세아는 그 포도나무가 무성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이 큰 번영을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호세아가 예언사역을 시작할 때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북왕국 이스라엘은 역사상 최고의 번영을 구가하고 있었습니다. 남왕국 지역을 빼고는 솔로몬 시대의 모든 영토를 회복했습니다. 물론 경제적으로도 매우 풍요로웠습니다.

 

   그런데 이 비유는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포도나무는 농부가 정성껏 돌보지 않으면 열매가 무성하게 맺힐 수 없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포도나무가 무성하게 열매를 맺게 된 것은 농부이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호세아는 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면서 이스라엘을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고 비유한 것일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셔서 이스라엘이 잘 살게 됐는데 저들이 이 사실을 잊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려는 것입니다. 이제 살만해 지니까 자기 힘으로 잘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하나님을 찾지 않게 된 것을 지적하려는 것입니다.

 

  일전에 후배 목사님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이 분은 고급 아파트단지 근처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서 준비했고 최선을 다해서 목회를 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전도가 잘 안 되고 너무 힘이 든답니다.

  이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동네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필요 없는 것 같아요. 삶이 여유롭고 환경도 좋아서인지 하나님을 찾을 생각도 없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할 생각도 없어 보여요. 하나님 없이도 자기들끼리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전에 하나님을 잘 믿던 사람들도 있어 보이는데 말입니다.”

 

   사실 교회를 잘 다니던 사람들 가운데서도 상황이 바뀌자 교회를 다니지 않게 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을 찾던 사람들이 여유로워지자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최근 코로나19사태 이후 미국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인들이 신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구글검색을 살펴보면 ‘믿음’, ‘하나님’, ‘기도’와 같은 내용이 급증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여론조사 기관인 퓨 리서치(Pew Research)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인의 55%가 코로나19확산을 멈추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 기도를 전혀 하지 않던 사람 15%와 심지어 비기독교인 24%도 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목할 것은 CBN 뉴스를 보면 코로나19사태 이후 성경판매가 크게 늘었다는 것입니다. 작년에 비해 금년에 틴데일 성경은 3배, 알라바스타는 134%, 그리고 라이프웨이는 62%가 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코로나19사태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해줍니다. 혹시 내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짓거나 영적으로 나태해서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해 줍니다. 하나님 없이 잘 살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진 것을 회개하게 해 줍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게 해 주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만들어줍니다.

   코로나19사태를 맞아 영적으로 우리 자신을 깊이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 마음

 

   본문 2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들이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벌을 받을 것이라”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속사람 안에 두 마음을 품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벌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두 마음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과 우상을 섬기는 마음을 말합니다. 조상 때부터 믿어온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과 가나안 땅에 들어와 살면서 새롭게 알게 된 우상을 섬기는 마음, 이 두 마음이 저들의 속사람 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는 저들은 왜 우상을 마음에 품게 된 것일까요? 구약을 연구한 신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만군의 여호와”로 믿어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만군의 여호와라는 말은 ‘여호와 체바오트’(יהוה צבאות)라는 말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 말은 한 마디로 말하면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 주시는 여호와라는 뜻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출애굽 이후 오랜 세월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광야 행군 때 남의 땅을 지나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 남들이 살던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들을 내쫓고 그 땅을 차지해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전쟁이 일상이 되다시피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세월을 벌써 수백 년입니다. 그 동안 저들은 주로 전쟁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이기게 해 달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와 정착한 뒤 농사를 지어야 했습니다. 문제는 이스라엘은 농사를 지어본 일이 없기 때문에 가나안 사람들에게 배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사람들이 농사를 짓는 모든 과정은 풍요의 신인 바알을 섬기는 것과 깊이 연관되어있습니다. 예를 들어 씨를 뿌리기 전에 바알신전에서 의식을 치릅니다. 추수할 때도 우상 앞에서 큰 축제를 벌입니다. 이스라엘이 농사를 배우면서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우상숭배의 영향을 받게 된 것입니다.

 

  저는 요사이 손주 녀석 재롱을 보는 재미에 푹 빠져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딸이 매일 저녁 아이패드로 아이가 노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돌이 지나 아장아장 걷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저도 모르게 쉴 새 없이 너털웃음을 짓게 됩니다.

  이 녀석이 관심이 있는 무엇인가를 보면 그곳으로 아장아장 걸어갑니다. 그리고 집요하게 그것을 가지고 놉니다. 어떤 때는 한 시간도 넘게 그것과 씨름하고 놉니다. 온통 그것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다른 것은 거들떠보지 않고 놉니다.“

 

   오늘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그동안 전쟁 상황에서 하나님만 바라보다가 이제 농사를 짓게 되면서 바알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점점 그 마음을 바알에게 빼앗겨 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속에 두 마음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최근 부동산 문제가 우리 사회의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주무장관인 김현미 국토부장관이 주목할 만한 말을 했습니다. 30대가 ‘영끌’로 부동산 매입에 뛰어들어서 안타깝다는 것입니다. 영끌이란 말은 영혼까지 끌어 모아 돈을 마련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30대가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 부동산 값이 너무 올라 집을 살 수 없을 것이라는 다급한 마음에 부동산매입에 뛰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온통 무엇인가에 마음을 빼앗겨 영끌을 하게 만드는 것이 우상입니다. 이렇게 영끌을 할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편법은 물론이고 불법도 저지르기까지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이 영향을 미칠 자리는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속에 이렇게 우상이 만들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을 붙잡는 것이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놓쳐버린 기회

 

   본문 3절은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들이 이제 이르기를 우리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므로 우리에게 왕이 없거니와 왕이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리요 하리로다.” 이 말씀은 호세아가 장차 일어날 일을 미리 예언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선 앞으로 이스라엘백성들이 자기들을 이끌어줄 왕다운 왕이 없음을 한탄할 날이 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왕이 있다고 해도 백성들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이 말씀대로 됐습니다. 여로보암 2세 이후 북왕국이 앗수르에 멸망당할 때까지 약 30년 동안 무려 왕이 여섯 명이나 바뀌었습니다. 심지어 여로보암 2세를 이어 왕이 된 스가랴는 겨우 6개월 밖에 왕좌에 앉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왕이 된 살룸은 한 달 밖에 왕좌에 앉지 못했습니다. 계속 반역이 일어나서 왕조가 뒤 바뀌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그러니 왕이 제대로 왕 역할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다음으로 백성들이 그렇게 나라가 망해가게 되자 그때야 깨닫고 후회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자기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왔기에 하나님의 심판으로 나라가 망하게 됐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때가 늦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호세아는 이스라엘을 향해 때가 늦기 전에 돌아서라고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그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계속 하나님을 두려하지 않고 살다가 결국 참담하게 망하고 말았습니다.

 

  한창욱이라는 분이 쓴 [죽을 때 후회하지 않게 사는 법 35가지]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평화로운 숲속 마을. 입 큰 토끼 수다와 귀 큰 토끼 아하가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다. 사냥꾼의 덫에 걸리고 마는 아하와 수다. 사냥꾼은 이들에게 하루의 시간을 주고 돌려보낸다. 살아 돌아온 수다와 아하는 각자의 방법대로 지상에서의 마지막 하루를 보낸 뒤 약속 장소로 갔다.

  동산에 해가 떠오를 때까지 사냥꾼은 나타나지 않았고, 새 삶을 살게 된 아하와 수다는 기뻐하며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수다는 이내 예전 생활로 돌아갔다. 그러나 아하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새 생명인데 단 한순간이라도 헛되이 보내고 싶지가 않았다. 아하는 무질서하게 헝클어져 있던 예전의 삶을 일사천리로 정리했다. 생활을 단순화 시키자 순간순간이 생기로 가득 찼다. 가슴 벅찬 비전을 가슴에 품고, 오늘의 삶이 마지막 하루인 것처럼 열정적으로 살았다. 간절히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나 돈이 없다는 이유로 미뤄왔던 일들을 해 나갔고, 그 과정에서 오랫동안 사로잡혀 있었던 콤플렉스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아하는 다시 사냥꾼의 덫에 걸렸다. 그러나 예전처럼 불안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냥꾼에게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하는 날이 밝기를 차분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아름답고 멋있었던 자신의 생을  돌아보며.

 

   본문의 이스라엘은 입 큰 토끼 수다가 걸었던 길을 걷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다가 호세아를 통해 하나님의 경고를 받고도 계속 그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코로나19사태를 통해 우리에게 우리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주셨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멀리하며 살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았다면 귀 큰 토끼 아하가 걸었던 길로 가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던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다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생각하려고 할 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할 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말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행하려고 할 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시 19:14에서 시인이 노래한 대로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라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