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지체
  고린도전서 12:27 / 고신일 감독 /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고린도전서 12장 27절>




<목회기도>
좋으신 하나님, 찬양과 경배를 받으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하늘의 복으로 가득한 삶의 주인공임을 간증하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에 성령의 감동으로 충만키 원하며 …
은혜 위에 은혜를 사모하며 예배드립니다.
엘리사의 사환처럼 영안이 열리며 … 갈릴리 호수처럼 풍랑은 잔잔해지고 …
홍해와 요단강이 갈라짐 같이 길이 열리어
찬양의 감동이 넘치는 삶이 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이 좋은 날, 좋은 계절에 … 군대로, 외국으로, 객지로 흩어져 있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저들에게도 한결같은 은혜를 내려 주시고 머리털 하나 상치 않게 보호하시고 …
한없는 은총으로 돌보아 주옵소서. 병상에서 치료 중인 성도들도 있습니다.
새 힘과 새 능력을 주옵소서.
불가피하게 인터넷과 휴대전화로 접속하여 예배드리는 모든 이들에게도
큰 감동과 은혜를 경험하는 복된 시간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귀한 시간 악한 마귀 틈타지 않도록 성령께서 붙들어 주옵소서.
부족한 종의 입술을, 혀를 붙들어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능력 있게 전하게 하여 주옵소서.
말씀을 듣는 성도들, 일어나게 하시고
새 힘 얻게 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는 복된 시간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약 10년 전에 나온‘인생은 말하는 대로 된다’는 책이 있습니다.(일본 작가 사토 도미오 지음)
우리 주변에는 매사를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 중에 성공한 사람이 몇이나 있는지 살펴보세요.
부정적으로 말하다 보면 결국 인생을 망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을 말로 내뱉는 순간 그걸 귀가 듣고
다시 뇌로 전해줘서 효과가 가중된다고 합니다.
살면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말 세 마디가 있답니다.
‘바쁘다, 힘들다, 죽겠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 세 마디를 3종 세트로 묶어 말하기도 합니다.
“바빠서 힘들어 죽겠다.” <2015.02.10. 조선일보, 참조>

여러분은 어떤 말을 자주 하십니까?
존귀한 자답게 존귀한 말을 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따라해 보겠습니다. “천국 소망으로 행복합니다.”
“살았으니 감사하고, 감사하니 살맛납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스도의 몸, 지체의 각 부분

오늘 본문에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27)
했습니다.

성경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에 비유합니다.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골1:18, 엡1:22)
성도인 우리는 몸의 각 부분입니다.
몸에는 여러 신체 기관-머리, 팔, 다리, 몸통 등이 있습니다.
겉보기에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신체의 한 부분이라도
그것이 없어지면 몸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 1986년 1월 28일, 우주왕복선 챌린지호가 발사된 후 73초 만에 폭발하여
승무원 7명 모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사고 원인은 오른쪽 고체연료 로켓 이음새 부분의 고무 O-RING 이 갈라져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서입니다.
쉽게 말하면 작은 고무 패킹이 끊어져 큰 사고가 난 것입니다.

- 비슷한 사고가 2003년 1월 16일에도 있었습니다.
우주 왕복선 콜롬비아호가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던 중에 대기권에 진입하자 폭발했습니다.
그 사고로 7명이 사망하였습니다.
사고 원인은 이륙 할 때 왼쪽 날개 아래 부분이 연료탱크 파편에 맞아 손상되었는데,
대기권에 진입하자 고열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한 것입니다.

두 사고의 공통점은 작은 부품의 결함 때문이었습니다.
엄청난 크기의 우주선은 수백만 개의 부품이 조립되어 완성된 것입니다.
그 중 어느 것 하나도 / 크든 작든 … 소홀히 생각할 수 없는 중요한 것들입니다.
작은 혹은 눈에 띄지 않는 부품이라고 해도 소홀히 여긴다면 대참사를 겪게 됩니다.
우리의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머리에 있는 작은 모세혈관 하나가 막혀서 터지게 되면
몸 전체를 가누지 못하는 마비증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눈, 코, 입, 팔, 다리 … 등 어디 한 군데라도 이상이 생기면
살아가기에 참으로 어렵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맹장을 우습게 여깁니다.
그래서 맹장에 염증이 생겨 터지면 수술해서 쉽게 제거해버립니다.
맹장은 소장에서 대장으로 넘어오는 뭉툭한 부분입니다.
맹장 아래로 6-10cm 길이의 연필 굵기 만한 돌기가 있는데, 이를 ‘충수’라고 합니다.
흔히 맹장염이라고 부르는 것은 충수에 염증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충수의 기능을 알지 못했습니다.
염증이나 일으키는 말썽쟁이 기관쯤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최근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충수는 인체에 이로운 다양한 종류의 박테리아를 생산하는 공장역할을 한답니다.
우리 몸의 소화기관에는 몸속 세포보다 더 많은 수의 박테리아가 사는데,
그 덕에 우리가 음식물을 소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이상훈 저, <세상을 지배하는 숨은 법칙>, 21세기북스, 참조 ]

물론 우리 몸에는 왜 있는지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남자는 수염이 있는데 여자는 수염이 왜 안날까?
어떤 사람은 오른손잡이고, 어떤 사람은 왼손잡이일까?
사람마다 왜 혈액형이 다를까?
그 중에 왜 있는지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바로 남자의 젖꼭지가 대표적입니다.
특별한 용도도 없는 것 같은데 하나도 아니고 두 개나 있습니다.

의학적으로 보면 남성들에게 젖꼭지와 가슴 조직이 일부 남아 있는 것은
초기 배아 때의 흔적이라고 합니다.
적어도 남자들의 젖꼭지는 생명의 신비를 나타내는 흔적입니다.
전혀 필요 없는 것 같아도 다 쓸모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셨고 남겨두셨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몸을 이루는 우리들도 여러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교회를 이루는 구성원은 요소요소에 꼭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그 중에 어떤 이는 보이는 곳에, 어떤 이는 보이지 않는 곳에 포진해 있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이루고 있는 누구라도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지체된 성도들은 서로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협력하며 격려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워가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2절에 보면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전 12:12)
했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이루는 그 누구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존귀한 자입니다.
교회를 얼마나 오래 다녔느냐 … 직분과 상관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봉사를 하고 있느냐도 헌금을 얼마나 했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거기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
하나님의 교회를 이루는 지체가 되었으면 … 누구라도 다 존귀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2장 22절과 23절에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고전 12:22~23)
했습니다.

연약해 보이는 것을 더욱 요긴하게 만드시고
덜 귀하게 보이는 것은 물론 아름답지 못한 것까지도
귀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주님의 몸인 교회의 지체는 모두가 「존귀한」데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 존귀한 지체로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서로를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나만 하나님 앞에서 존귀하다고 뽐내거나
나는 왠지 쓸모없다고 여기는 것 모두 잘못된 것입니다.

최근에 ‘갑질’이라는 단어가 미디어를 통해 많이 전파됩니다.
‘갑질’은 특권적 지위를 가진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무시하고 강압하며 탈취하는 일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몸인 교회의 지체가 된 우리들이 서로 갑질을 행하지는 않았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예수 믿은 지 오래 되었다고 해서 … 먼저 믿어 직분을 먼저 받았다고 해서 …
남을 무시하거나 낮추어봐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모두 귀한 존재들입니다.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듯이 예수 믿은 지 … 신앙생활 한지 오래된 분들이 …
중직을 맡은 분들이 … 더 낮추고, 더 예의바르고, (사랑은 무례하지 않는 것 – 고전 13:5)
더 섬기고 배려해야 합니다.


지체의 다양성

보통 자동차는 1만 3천개, 비행기는 3백만 개,
우주선은 5백만 개의 부속품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 몸속의 세포는 60조 개나 되고
우리 몸의 혈관 길이는 지구 세 바퀴 둘레에 해당하는 12만 킬로미터에 이른다고 합니다.
우리 몸에 기생하는 미생물도 수 없이 많아 그 무게만 1kg이 된다고 합니다.
우리 몸은 하나의 소우주와 같이 대단합니다.

로마서 12장 5절에 그 대단한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인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롬 12:5)
했습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2장 14절에도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고전 12:14)
했고

20절에도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고전 12:20)
했습니다.

지체의 다양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양하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뜻입니다.
숲의 나무도 여러 종이 섞여 있어야 건강한 숲을 이룹니다.
단일 수종만 있는 지역은 특정 병충해에 속수무책일 때가 있습니다.
큰 나무, 작은 나무, 잎이 가는 것, 넓은 것, 가지가 많은 나무, 가지가 얇은 나무 … 등
온갖 나무가 어울려 있는 산이 건강한 산입니다.
그러므로 다양성은 건강함을 드러내는 것이며 멋있는 것이고 동시에 축복입니다.
교회도 다양한 사람이 모여 여러 분야에서
각자의 기능을 발휘하고 상호보완 관계를 유지하고
유기체(생명체)로써 움직여 가는 교회가 건강하게 지속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서로 서로 다른 사람들의 다양성을 /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7~18절에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고전 12:17~18)
했습니다.

눈은 눈대로, 귀는 귀대로, 코는 코대로의 역할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눈이 귀가 부럽다고 하여 들으려고 하고, 코가 눈이 부럽다고 하여 보려고 한다면
우리 몸의 기능이 제대로 유지되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서로의 다름(상이성)을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다름은 틀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틀렸다고 몰아세우면 분열과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다름과 다양성이 서로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보면 다른 사람 신경쓰느라
예배도, 봉사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 사람은 저렇게 하는데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며 아무것도 안하려고 합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 첫 부분에
“…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 …”(고전 1:5,7)
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는 그 복을 다 누리지 못했습니다.
바울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 등 파당을 지었습니다.
나와 다른 은사를 받은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질투하여 분쟁과 갈등으로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고전 12:8~10)


은사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싸우는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충고한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고전 12:25)
했습니다.

서로를 인정하고,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그에게 감당 가능한 은사와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몸인 교회의 지체로서 자신의 모습에 감사해야 합니다.
교만하여 내가 할 수 있는 것 가지고 잘난 척 하거나 자랑하고 자신을 비하해도 안됩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높게 보고 부러워하거나 비판하여 깎아 내리거나 무시해도 안됩니다.

여러분, 채 써는 것 잘 하십니까?
예전에 저는 어머니가 무채를 써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제가 한번 해봤는데 잘 안되더군요.
일정한 굵기로 썰어야 되는데 제각각 다 달랐습니다.
채 써는 것 쉽지 않더군요. 사람마다 가진 재능이 다릅니다.
다른 사람이 잘하는 것과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다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귀히 여기고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작년 가을에 용인에 있는 어떤 초등학교 가을운동회에서
‘다같이 손잡고 달리기’ 라는 제목의 사진이 온 국민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었습니다.
한 아이에게 키가 자라지 않는 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달리기만 하면 항상 꼴찌였습니다.
6학년 마지막 운동회를 앞두고 몇몇 친구들이 생각을 모았습니다.
다 같이 손을 잡고 뛰자는 것이었습니다.
담임선생님께 미리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허락하셨습니다.
출발선에 선 아이들은 총소리와 함께 친구의 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밟고 올라서려 하고, 이기려고만 하는 이 사회에 …
다름을 멀리하고 외면하는 어른들에게 … 가슴 뭉클함을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진에 담긴 사연을 듣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시에서는 아이들을 불러 특별 표창장을 주었고,
한 놀이동산에서는 아이들 모두를 초청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분은 저 아이들을 위한 장학금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다르다는 이유로 …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
모두를 외면하고 멀리한다면 그런 사람은 외톨이로 남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 모두는 서로 서로 한 몸임을 기억하며 손잡아 주고, 힘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지금도 기둥교회는 건강한 교회지만 …
서로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더 건강한 교회가 되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고, 사람들이 칭찬하는 교회가 되는 일에 여러분 모두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지체는 몸에 속해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어떤 지체도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이기 때문에 모든 지체들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5~16절에
“발이 말하기를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속한 것이 아니다" 한다고 해서
발이 몸에 속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또 귀가 말하기를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속한 것이 아니다"
한다고 해서 귀가 몸에 속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고전 12:15~16) <새번역>
했습니다.

몸과 하나되어 있지 않는 지체는 … 죽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각 지체는 몸에 속해 있어야 그 기능을 발휘합니다.

요한복음에서도 몸을 떠난 지체가 아무 쓸모없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5~6절 같이 읽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요 15:5~6)
했습니다.

요즘은 개인주의가 만연하다보니 개인주의가 당연시되는 시대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관심 갖고 물어보는데 신경쓰지 말라는 말을 듣는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도 다른 사람의 간섭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지어 교역자의 관심까지도 거북스러워합니다.

잘하는 것 같지만 스스로 불쌍한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교역자는 양떼를 살펴야 하고 양은 목자의 눈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게 성경적입니다.
신경 쓸 일 없으면 기둥교회는 목사 한 사람만 있으면 됩니다.
담임목사가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으니 부교역자들이 심방하고,
아픈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위로 하는데 신경쓰지 말라고 한다면 부교역자들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고전12:18)기 때문에
혼자만 단독적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가 자신의 자리를 이탈한다면 몸이 무너지게 됩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이 어디 있는지, 바르게 신앙생활 하는지 살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진정으로 한 몸을 이루었다면 26절의 말씀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고전 12:26)
했습니다.

날카로운 칼에 손을 약간 베이거나 작은 가시에 손이 찔려도
계속 신경이 쓰이고, 활동하기가 불편합니다.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고통이 모두의 고통이 되고,
한 사람의 영광이 모두의 즐거움이 될 때
건강한 교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아픔에 함께 눈물 흘려줄 줄 알고,
다른 사람의 기쁨에 함께 기뻐할 수 있는 건강한 교회를 함께 만들어 가야 합니다.
좋은 교회를 찾는 방랑자가 아니라 좋은 교회를 만드는 사명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지체는 머리의 지시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몸의 각 지체가 제각기 하고 싶은 대로 … 움직인다면 …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럴 경우 우리는 장애, 혹은 불구라고 표현합니다.
머리의 지시를 받지 못하는 지체는 건강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몸인 교회에 우리는 지체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한 교인입니다.
성경말씀대로 하지 않는 것은 장애입니다.
영적인 장애, 신앙의 장애입니다.
건강한 성도는 머리되신 예수님의 뜻에 따르는 순종하는 교인입니다.
그런 사람이 바르게 신앙생활 하는 것입니다.

보기에 약해 보여도, 덜 귀해 보여도 다 필요한 것처럼
우리가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모든 이들은 귀한 존재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각각 지체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가정에 돌아가서도 그리스도의 한 몸의 지체로서
내 가정에서 우리 식구들이 나 때문에 살맛나고,
영적 삶을 기쁨으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모이면 여러분 때문에 모일 맛이 나야되고,
선교회에 갈 맛이 나게 살아야 합니다.
직장에 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둡고 침침한 곳에 가면 환하게 만들어 주는 빛의 사명도 우리가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의 일원으로서 범사의 삶에 하나님 마음에 들고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복된 삶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