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나무 비유(눅13:6-9)
무화과나무 중에는 인도의 파고다 무화과나무처럼 사방 90미터의 그늘을 드리울 정도로 크게 자라는 종류도 있으나 높이 자라기보다 옆으로 낮게 퍼져나가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쉽게 손을 뻗어 열매를 따먹을 수 있는 친근한 유실수이다.
따라서 가지를 낮고 넓게 펼치면서 열매를 많이 맺는 무화과나무는 이웃을 섬기는 믿음의 원리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무화과 열매는 인간적인 선행과 관련이 있다.
● 마태, 마가복음에 보면 저주받은 무화과나무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예수님께서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로부터 열매를 얻고자 하였으나 얻지 못했을 때 그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고, 무화과나무는 뿌리 채 말라버렸다. 이 사건은 예루살렘 성전 청결 사건과 함께 기록되어 있는데, 그 의미가 무엇일까?
유대인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 가난한 자와 과부, 고아, 나그네, 굶주린 자, 집 없는 자, 갇힌 자, 억눌린 자들을 돌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이러한 성경의 지식을 풍성히 갖고 있었으며 그것을 자주 말했으나, 실제로는 그들을 돕는데 인색했다. 즉 열매는 없고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자랑하고 거룩한 성전제사를 강조하면서도 그 율법이 요구하는, 즉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이웃사랑을 마다했던 유대인들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와 같았다. 더구나 알고도 행하지 않았으므로 그 지식은 자신들을 정죄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치시고 깨우쳐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거부하고 반항하며 결국 예수님마저 십자가에 못 박았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저주로 뿌리부터 말라버린 무화과나무처럼, AD70년 로마에 완전히 패망하여 2천년동안 전 세계에 흩어져 유리방황하는 민족이 되고 말았다.
무화과나무는 동일하게 오늘의 교회와 성도를 상징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저주받은 무화과나무 사건이나 오늘 본문의 무화과나무 비유에서 오늘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만 한다.
● 13:6 한 사람이... 얻지 못한지라
본 절에서부터 9절까지는 일명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와 포도원 주인의 비유’라 불리는 부분으로 앞선 두 비유(2-5절)가 회개치 않는 자에게 임할 심판을 강조함으로써 회개를 촉구했다면, 여기서부터 이어지는 비유에는 하나님께서 인내하시는 동안 회개할 것을 촉구하는 말씀이 주어지고 있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것으로, 구약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이 포도(시80:8-11,사5:2)나 무화과나무(렘24:3)로 비유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렇다면 무화과나무를 심은 사람은 하나님을 비유하며 열매는 이스라엘 백성의 참된 회개를 뜻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참된 회개’인데, 회개는 지금까지 자신이 잘못 걸어온 길을 청산하고 그 길을 다시 가지 않는 것은 물론, 새로운 길을 길어가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참된 회개는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며 포도원에는 여러 가지 과실수들이 함께 심어졌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무화과나무가 주인의 기대에 어긋나게 열매를 맺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인내에도 불구하고 회개의 열매를 맺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킨다.
13:7 삼년을 와서... 얻지 못하니
여기서 과원지기는 예수라고 보아야 하며 이 과원지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화과나무는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삼 년’의 기간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보호 아래 은혜 받은 기간으로 보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 포도원 주인은 3년이 지나도록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자 과원지기에게 무화과나무를 찍어 버리도록 지시했다.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는 두 가지 면에서 부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과실수가 과실을 맺지 못하므로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상실했으며, 다른 하나는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어서 땅만 버리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 쓸모없는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리라는 명령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한 것은 그들에게서 의의 열매를 얻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우상 숭배와 배교만을 일삼았을 뿐 의의 열매를 맺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당할 처지에 이르렀던 것이다.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여기서 ‘버리다’(카타르게이)는 ‘못쓰게 하다’, ‘쓸모없게 되다’, ‘다 써버리다’의 뜻으로, 여기서는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더 유용하게 사용될 수도 있는 땅을 차지해 버렸고, 또한 다른 식물에게 필요한 수분과 영양분까지 흡수해 버림으로써 오히려 큰 해악을 끼쳤음을 보여 준다. 때문에 주인은 과원지기에게 ‘찍어버리라’고 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귀중한 교훈을 깨달아야 한다. 무화과나무를 심은 목적은 열매를 얻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의의 열매를 맺도록 요구하심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은,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가 땅만 버리듯이, 자신만 멸망당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암적인 존재가 된다는 사실이다.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정말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13:8 주인이여...거름을 주리니
과원지기가 주인에게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기회를 한 번 더 부여해 줄 것을 간청하고 있다. ‘두루 파고’에서 ‘파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뿌리 주변에 있는 흙을 긁어 부드럽게 해주는 것이다. 뿌리 주변의 흙을 부드럽게 해주는 거름을 주는 이 특별한 배려는, 열매를 맺어야 하는 기간이 3년이나 지나도록 전혀 과실을 맺지 못하는 나무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형편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특별한 정성을 쏟음으로써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유대인들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궁극적 관심은 심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에 있음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과원지기의 간청은 죄인들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기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기도는 소돔성을 위한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주께서는 중보기도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에 거름을 주는 수고를 하시면서 회개의 열매 맺기를 원하신다. 여기서 우리는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고 인내하시며 끝까지 그들의 구원을 위해 애쓰시는 그리스도 예수를 볼 수 있다.
그런데 동시에 ‘금년’이란 한정된 기간의 때가 회개해야 할 마지막 기회임을 알아야 한다. 즉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특권을 가졌으나 회개치 않음으로 심판을 받은 것처럼 은혜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도 심판의 종말이 이르기 전에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이다.
13:9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찍어버리소서’(엑콮세이스)는 미래(의지) 능동태 직설법 2인칭 단수형으로 미래에 있게 될 심판이 강조되고 있다. 이 심판은 주후 70년의 예루살렘 멸망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죄인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받게 될 불신자의 심판을 가리킨다.
과원지기는 나무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어 줄 수는 있지만 열매를 맺는 것은 나무의 상태에 달린 문제이다.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기간을 연장해 주고 잘못된 점을 지적해 줌으로써 조건을 만들어 줄 수는 있지만 회개를 하느냐 안 하느냐의 결정은 개인의 주체적 판단에 의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회개할 수 있도록 유보해둔 심판까지의 기한은 분명히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1-9절은 눅12장에 이어 계속해서 회개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따라서 심판을 앞둔 은혜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날에 임할 진노를 받지 않기 위하여 심령의 완고함과 무감각함을 버리고 통회함으로 구원받는 믿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 예수님 당시에는 이 비유가 분명히 그의 시대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을 향해 준 비유였다. 그리고 무화과나무가 흔히 유대 백성에 대한 상징이었기 때문에 예수의 비유 목적은 열매를 맺어야 할 택함 받은 백성들이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고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로 남아 있을 때 하나님이 그것을 찍어버리려고 하는 것은 더욱 당연한 일이 아니겠느냐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농부가 무화과나무에게 열매를 맺을 때까지 한 번 더 기회를 주듯이, 유대 백성에게도 회개할 수 있는 은혜의 기간이 주어졌으니 마지막 심판의 때가 이르기 전까지 회개하고 열매를 맺으라는 것이 예수의 메시지였다.
더욱이 포도원이 주의 교회를 상징하고 있음은 이미 앞서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다’고 하였는데 과연 무엇을 나타내는 말인가? 무화과나무는 주가 요구하시는 선한 삶의 열매를 뜻한다. 다시 말해 포도원인 교회에서 무화과나무와 같은 아름답고 선한 열매를 맺기를 기대하셨다는 말이다. 주님께서는 얼마나 자주, 그리고 간곡히 우리 교회가 착한 행실의 열매를 맺으라고 타이르셨던가?
그런 의미에서, 한 해만 더 연기해 달라는 과원지기의 요청은 바로 주님 자신의 교회에 대한 배려요, 우리 모두에 대한 염려의 표시이다. 교권과 맘몬과 권세에 빌붙어 메말라만 가는 오늘의 신학에 대한 마지막 배려이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의 무화과나무 비유는 심판의 비유이며, 종말의 비유, 혹은 위기의 비유이자 ‘자비의 비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