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기넘치는 원고설교와 죽은 원고설교

에스겔선지자가 목도했듯이 마른뼈들에게 생기가 들어가자 마른윳湧� 살아나 군대가 되었듯이 원고설교에도 이러한 성령의 생기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원고설교에 생기가 불어넣어졌는가? 질문입니다. 나의 설교원고가 죽어있는가? 아니면 생기가 넘치는가? 문자는 죽은것이고 영은 살리는것일진대 우리의 설교원고가 문자에 그친다면 그것은 죽은 설교가 될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설교원고에 하나님의 성령의 생기가 불어 넣어지도록 간절한 기도와 생생한 현장성과 친숙함이 더해진다면 설교원고는 마른뼈같은 죽은 설교가 아니고 살아있는 생기가 넘치는 원고설교가 될것입니다.

최근 원고설교를 하는 한 설교자의 설교를 들으면서 “저건 죽은 원고설교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설교자는 서두에서부터 긴 신학적 인용문을 그저 원고만 보고 읽고 있었습니다. 후에는 또 다시 긴 찬송가를 한절도 아니고 네절을 그저 원고만 보고 읽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청중은 지루함속에, 그리고 설교자와 교감의 단절의 침묵으로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죽은 원고설교는 설교적 고문(torture)이 될수도 있습니다. 설교를 듣는 시간이 고통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 설교는 억지로 쓰여진 설교라는 것을 느낄수 있었고 설교를 위해 설교자가 무릎꿇지 않았다는것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설교원고는 그에게 회피이고 도피였다는것도 알수 있었습니다. 깊은 묵상후에 쓰여진 설교가 아니라는것을 알수 있었고 청중과 설교자의 삶에서 나온 설교가 아니라는것도 알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강력한 말씀하심도 볼 수 없었고 시대상황에 대한 성육신적인 적절한 메시지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죽은 원고설교였습니다.
그렇다면 생기넘치는 원고설교는 무엇인가? 또 다른 설교자는 원고설교를 하지만 청중을 처음부터 사로잡습니다. 원고라는 문자의 도움을 받지만 문자를 뛰어넘어 영이 흐르는 설교입니다. 원고설교이지만 자유함을 느낄수있는 설교입니다. 깊은 영성과 설교를 위한 많은 기도의 능력을 느낄수있는 터져나오는, 뿜어나오는, 간절함과 진실함의 설교입니다. 심각한 문제의식을 전달하며 청중과 설교자가 함께 고민하며 그 해답을 성서로부터 찾아가는 설교입니다. 문자의 원고설교이지만 설교안에 “대화”가 존재하는 친밀한 설교입니다. 이러한 생기넘치는 원고설교에서 청중은 “빛”을 볼 수 있습니다. 청중은 “에너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청중은 “활기넘치는 리듬”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생기넘치는 원고설교에서 청중은 하나님의 계시를 들을 수 있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성령을 통해 우리의 아픔과 갈등, 우리의 방황과 고뇌, 우리의 변화와 성장을 위해 말씀하시며 우리와 대화하기 원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 그분의 사랑의 초대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죽은 원고설교를 생기넘치는 원고설교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첫째는 우리의 설교원고의 시작이 책상이나 컴퓨터 앞에서 시작되어서는 안됩니다. 설교는 기도의 골방에서, 고요한 성전 마루바닥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한편의 설교에 우리는 그렇게 많은 주제와 복잡한 사상이 필요하지않습니다. 한주간 성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살아계신 말씀, 죽은 문자와 죽은 언어가 아닌 살아있는 “계시”로서의 하나님의 단순한 그러나 강력한 말씀이 필요합니다. 그외의 예화나 성서주석과 강해 그리고 적용은 이 첫번째 단추가 잘 풀렸을때 쉽게 풀릴수있습니다. 수많은 예화, 그리고 학문적인 주석과 강해 그리고 수많은 윤리적 적용이 넘치는데도 여전히 설교가 맥을 잃고, 풀죽은, 지루한, 전혀 성도들의 가슴을 파고들지 못하는 설교를 봅니다. 그것은 바로 설교의 첫출발이 어디였는가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성서와 골방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설교자가 청중의 문제와 아픔 그리고 그들의 영적인 필요를 가슴에 안고, 제사장적 중보자로서 하나님과 청중을 각각 한손에 잡고 대화를 주도할때 우리는 죽은 원고설교의 위험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청중을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골방에서 성서와 함께 들으십시요. 하나님을 향해 청중과 함께 그들의 아픔과 필요를 가지고 나아가십시요. 이 과정을 한 두장의 종이위에 골방에서 적으십시요. 이것이 가장 중요한 살아있는 생기있는, 힘있는 원고설교의 기초석입니다.

둘째는 설교 원고 준비를 미리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다음주 주일 설교라면 이번주 월요일오전까지는 설교원고 “초고”가 완성되게 하십시요. 토요일에 준비되고 쓰여진 설교원고는 죽은 원고설교가 되기 쉽상입니다. 또한 단번에 설교원고를 “완성”시켜야할 필요가 없습니다. “초고”를 쓴다는 마음으로  네장에서 여섯장정도를 복잡한 인용없이 설교자의 “창작”으로 써내는 작업을 월요일까지 끝내는것이 좋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성서, 청중, 그리고 설교자가 함께 만들어내는 설교초고입니다. 이것이 둘째 생기있는 원고설교의 초석입니다. 첫 단계의 한두장의 골방메모에서 여러장의 설교초고로 발전시킵니다. 이 단계에서는 컴퓨터를 사용해도 됩니다.

세째는 매일 한번씩 설교원고를 소리내서 읽으십시요. 색깔 볼펜으로 마크를 하면서 설교전달의 억양과 제스처도 생각하면서, 설교음성의 고저를 고려하면서 읽으십시요. 그리고 필요한 신학적, 주석적 연구를 원고에 수정 첨부하십시요. 필요한 설교은유, 즉 예화들을 삶속에 찾고 첨부하십시요. 설교초고는 한 주간동안 수정될 수있습니다. 확대될 수 있습니다. 삭제될 수도 있습니다. 한국교회 “한시간” 주일 예배상황에서 설교는 이십분정도 혹 이십오분정도가 적당하고 그렇다면 원고는 네장에서 여섯장 정도면 됩니다. 이렇게 우리가 설교의 범위를 미리 알기때문에 설교원고작성시 그리고 수정할때 도움이 됩니다. 한주간을 주초에 작성한 설교초고를 가지고 설교자로서 목회자로서 살아가며 매일 기도하고 묵상하고 적용하고 설교은유(예화)를 향해 일상의 삶에 눈을 뜨고 있으면 설교준비는 쉬워지고 즐거워지고 단단해지고 강력해집니다. 그러면 죽은 원고설교를 하지않고 생기넘치는 생명력이 넘치는 설교를 할 수 있을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