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고린도전서 1:18-31, P.264
제목: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교회의 분쟁을 치유하는 근본 원리를 제시하는 말씀입니다.
고린도교회는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는
파벌로(고전1:12), 심각한 분쟁을 겪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글로에의 집 편으로 고린도교회의 분쟁의 소식을 들었습니다(고전1:11).
여기의 "글로에[클로에(Clovh)]"는.... "초록의, 푸른 꽃, 연한 초목"을 뜻하며, 고린도교회의 여성도입니다. 농사의 여신
데메텔(Demeter)의 별명이기도 합니다. 아무런 소개 없이 "글로에"라고 한 것을 보면, 고린도교회에 잘 알려진 여성도로 상업을 했습니다.
"글로에의 집 편"은 "글로에의 사람들"이란 말로, 상업차 에베소로 오갔던 종/일군의 편으로 고린도교회의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의 분쟁은,
글로에의 집 편으로 「분쟁이 있다」는 소식이었는데(고전1:11), 이
"분쟁[에리스(e[ri")]"은.... "다툼, 논쟁, 변론"을 뜻합니다. 부정적인 의미로 악덕(惡德)에 하나입니다.
"분쟁[에리스(e[ri")]"이 진행되면,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권하는
"분쟁[스키스마(scivsma)]"이 되고 맙니다(고전1:10). 이 "분쟁[스키스마(scivsma)]"는.... "쪼개기, 분열, 틈"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고린도교회의
분쟁은 아직까지 분열 사태는 아니나 분열 사태로 가기 직전에 와 있는 상태입니다.
고전 1:10절/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온전히
합하라"....
사도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주님의 다른 칭호를 반복/겹쳐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진지함과 간절함으로 호소하고 있습니다. 여기의 "권고하노니[파라칼레오(parakalevw)]"는.... 「곁으로+부르다」의 합성어로 "가까이 부르다, 초청하다,
간청하다, 권고하다, 위로하다"를 뜻합니다. 또 "온전히 합한[카탈티조(katartivzw)]"은.... "완성하다, 준비하다, 회복하다"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올바른 상태로 회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물을 깁고(마4:21), 믿음의 부족을 채우는 것을 말합니다(살전3:10). 여기서는 수동태 분사로 "온전히 합쳐지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바라고, 권하고, 간청하고, 호소하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쳐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바로 나는 할 수 없으나 주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분쟁의 당사자인 성도들이 자신의 힘이 아닌 주님의 능력으로 고린도교회가 분쟁 없이 하나되어지기를 바라고, 권하고, 간청하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린도교회의 분쟁의 해결책으로 사도 바울이 제시한 말씀입니다. 미련한 자는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파벌이 왜? 생깁니까.... 자랑할 것이 많은 잘난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 했습니다(고전2:4-5). 다시 말해서 사람의 지혜로 죄인을 구원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말로 아니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하였다....
이런 말씀으로 보아 고린도교회에 지혜의 말로 한 당파를 이룬 무리가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아마도 아볼로파가 되리라 봅니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입니다. 알렉산드리아는 알렉산더 대왕이 세운 중요한 해양 도시로
유대인들을 이곳에 이주시켜 인구의 1/3이 될 정도로 번성했습니다. 자연적 유대인도 헬라 철학을 공부하여 필로(Phild)와 같은 철학자가
나왔고, 구약성경(히브리어)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도(LXX) 이곳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이 아볼로가 필로(Phild)의
제자라고 합니다.
이 아볼로는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입니다(행18:24).
"학문이 많고[로기오스(lovgio")]"는.... "유식한, 유창한, 연설가"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아볼로는 헬라 철학, 성경, 언변에 능한 자이었습니다. 그러나 주의 도에는 요한의 세례만 알 뿐 성령 세례를 몰랐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게서 더 자세히 배웠습니다(행18:26). 이 아볼로가 에베소교회의 천거를 받아 고린도교회로 갔습니다. 고린도교회에서 헬라 철학과 성경에
능통한 그가 유창한 언변으로 「공중 앞에서 유대인의 말을 이김」으로(행18:28),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아볼로파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아볼로가 서로 불화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고전 3:6-7절/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개척하여
복음을 심었고, 아볼로는 그 복음에 물을 주었고,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자라서 열매맺지 못하면, 심고 물 주는 일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모르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심는 것을 최고로,
물 주는 것을 최고로 알고 편당을 지어 서로 최고라는 자랑에서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요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이
최고입니다. 그 최고이신 하나님의 사도로 부르심은 입은 자나,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자나,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본문29절). 자랑하려면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 했습니다(본문31절).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이 있고, 성도가 있고, 고린도교회가 있고, 심는 이도 있고, 물 주는 이도 있고, 주 안에서 자랑도 있음을 알고,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는 말씀입니다.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부활의 주님의 명령을
좇아 전도합니다(마16:15).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주님의 지상 최후의 명령을 좇아 전도합니다(마28:19-21).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좇아 전도합니다(행1:8). 전도의 삶을 살면 살수록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는 말씀을 절감하고
스스로를 낮추게 되어, 자랑을 멈추게 됩니다. 곧 파벌이 사라지고, 하나를 이룰 수 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1.전도는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본문 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의 도가 멸망자에게는
미련한 것, 구원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
이 "십자가의 도"가 사도들의 전도의
핵심입니다. 곧 전도의 내용입니다. 오순절에 성령 충만하여 베드로는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고
했습니다(행2:23-24).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를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할하는 도 전함을 싫어하여」 사도들을 잡아
가두었습니다(행4:2).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가 바로 "십자가의 도"입니다. 이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것이
전도(傳道)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직역하면, 「그 말씀 곧 그 십자가의」입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받는 진리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바로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다」는
진리입니다(롬4:25). 이 "십자가의 도"가 세상 지혜로 보면 참으로 미련한 것입니다. 생판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이 나의 죄를 대신하여
죽었다고 하니, 어처구니없습니다. 더욱이 자기는 믿는다며 믿으라고 하니, 참으로 어리석고 미련하기 짝이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 했습니다(본문23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자에게는 미련한 것, 구원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의 "미련한
것"은 지혜의 반대말입니다. 바로 앞절인 고전 1:17절에서는 「말의 지혜와 십자가의 도」가 서로 대비되어 있습니다. 헬라 철학이 발달할 만큼
헬라인들은 지혜를 최고로 여겼습니다. 다시 말해서 공중 앞에서 지혜로운 말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웅변가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 수 없으니, 그 지혜의 길이 멸망 길입니다. 말의 지혜/웅변에 빠져 십자가의 도가 미련하게 보이나, 진짜로 미련한 것은 세상의
지혜임을 모르는 것입니다. 세상 지혜로 하나님을 알 수 없으니, 하나님이 세상 지혜를 미련하게 한 것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본문20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자에게는 미련한 것, 구원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이 "능력[뒤나미스(duvnami")]"은.... "힘, 권능, 능력"을 뜻합니다. 곧 육신적, 영적, 지적 능력을 말하며, 헬라
철학에서는 우주적인 생명력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능력만이 죄인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능력이 십자가의 도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본문24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전도(傳道)는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는 것입니다. 에덴에서는 하나님이
직접 대화로 전했습니다. 실낙원(失樂園) 후에는 사자(천사)를 통해서, 선지자를 통해서, 아들(예수)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했습니다(히1:1-2). 그 아들이 오셔서 12제자를, 70문도를 전도자로 파송을 했습니다. 함께 먹고 자며, 보고 듣고 배운 것을 전하게
했습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전도(傳道)하라고 했습니다(행1:8).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전도(傳道)는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는 것입니다. 시대를 따라 전하는
사람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사자(천사)가, 선지자가, 아들이, 사도가, 성도가.... 이렇게 달라지면서 「전도(傳道)의 말씀」이
"십자가의 도"로 하나를 이루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이나, 유대나, 사마리아나, 니느웨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온 세상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십자가의 도"로 통일된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
참으로 어리석고, 미련하고, 우스꽝스러운 그 이야기가 나 같은 죄인을
하나님의 아들로 구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전한 "십자가의 도"를 듣고, 다른 사람도 구원 얻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교장실로 찾아와 "교장선생님, 예수 믿으세요. 예수 믿어야 천국 가고, 안 믿으면 지옥 갑니다"는 어린 학생의 그 한마디가 결국은
교장선생님이 예수 믿도록 했다는 이야기.... 참으로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전도하는 삶을 통해 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사람은 자기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파당을 지어 분쟁할 수가 없습니다.
2.전도는 미련한
것입니다.
본문 21절/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곧 전도는 미련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바로 전도는
"십자가의 도"를 전하기 때문입니다. 전도의 방법을 말합니다. 이 세상의 지혜로 바라보면 "십자가의 도"는 미련한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나사렛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고, 생판 알지도 못한 그가, 그것도 내가 생겨나기도 전인 2천년 전에 내 죄를 대속하려
죽었다 하고, 그 죽은 예수를 하나님이 살려 부활했다 하고, 그 사실을 믿으면 부활하여 천국에 간다고 하니.... 참으로 어리석고 미련하기 짝이
없는 소리로 들립니다. 그러나 그 미련하기 짝이 없는 소리를 통해서 믿는 자들을 구워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미련하기 짝이 없는
소리를 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그래서 전도는 미련한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를 대비시켜 놓고 있습니다.
이것이 말의 지혜와 십자가의 도로 나타나 있습니다(고전1:17). 또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다」고 했습니다(본문25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고전2:1-2). 다시
말해서 바울의 복음 전도는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곧 미련하기 짝이 없는 소리,
"십자가의 도"를 전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전도는 미련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역설적인 말입니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다」고 했습니다(본문25절). 그러므로 그 "미련하다"는 말이 실제로 "미련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 했습니다(고전2:6-8).
그렇습니다.
참 지혜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에는 참 지혜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라고
했습니다(본문20절). 한마디로 이 세상에는 지혜자가 없고, 세상 지혜는 오히려 미련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대의 관원이 참 지혜를 가졌다면
영광의 주를 어찌 십자가에 못 박겠느냐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전도는 미련한 것이지만, 세상 지혜의 말로 구원할 수
없는 죄인을 그 미련한 것으로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실은 이 진리를 아는 것이 참 지혜입니다. 이 진리를 모르는 자가 바로
어리석은 자이요, 미련한 자입니다. 아무리 지혜의 권하는 말로 유창하게 상대방을 제압하고, 청중을 사로잡는다고 할지라도 죄인을 구원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지혜의 권하는 말로 유창하게 대중을 사로잡는 그 사람이 죽으면/떠나면 흩어지고 맙니다. 오늘의 대형교회가 후계자 문제로
말썽을 빚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전도는 미련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 진리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의 전도는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 했습니다(고전2:5). 다시 말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능력에 뿌리박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성도들의 믿음이 하나님의 능력에/예수 안에 뿌리를 박고 있으면 흔들리거나 흩어질 염려가
없습니다. 분쟁이 없고,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됩니다.
3.전도는 믿는 자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본문 21절/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 곧 "십자가의 도"로 구원하신다고 했습니다. 곧
전도의 목적입니다. "십자가의 도"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긍정적으로 구원을 얻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부정적으로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입니다. 여기의 "미련한 것[모리아(mwriva)]"은.... "어리석음"을 뜻합니다. 신체적 장애나 정신적 우둔함을 말하는데, 중생하지 못한 자는
모든 가치를 육신적/물질적 기준으로 판단하기에 "십자가의 도"는 무가치합니다. 그 무가치한 것을 좇는 것이 미련하여 "십자가의 도"를 따르지
않습니다. 그 결국은 멸망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얻을 자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도"를 믿고 의뢰합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은 자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합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하시기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게 하심은 믿는 자들을 구원하려 하심입니다.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 했습니다(본문24절). 다시 말해서 유대인(선민)과 헬라인(이방인) 곧 온 세상 사람들 중에 믿고 구원 얻을 자들
곧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했습니다.
온 천하 만민 가운데 믿고 구원 얻을 자들 곧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고 구원 얻을 자들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합니다. 이 또한 미련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를
전해야 합니다. 이 또한 미련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미련한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요, 이 미련한 것이 죄인을 구원합니다. 그래서 전도의 미련한
방법으로 "십자가의 도"를 믿는 미련한 자를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본문 26절/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형제들아 너희의 부르심을
보라"....
지금까지 일깨운 전도의 미련한 것 곧 "십자가의 도"를 이제 사도 바울은
자기가 받은 은사, 자기가 속한 당파 자랑으로 분쟁하고 있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적용합니다. "너희 자신들을 보라. 지혜로운
자인가? 미련한 자인가?" 묻고 있습니다. 지혜 있는 자(철학자 같은 지식층), 능한 자(정치적 권력층), 문벌 좋은 자(사회적 상류층)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의 부르심을 보라"....
하나님의 부르심이 이런 외적인 조건과는 무관하다는 말씀입니다. 오히려 "십자가의 도"를 믿는 미련한
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방법으로 "십자가의 도"를 믿는 미련한 자를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랑하지 말고, "너희들 중에 지혜 있는 자, 능한 자, 문벌 좋은 자가 얼마나
되느냐?」.... 스스로를 돌아보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의 예수가 성도의 자랑이요, 지혜이요, 의로움이요, 거룩함이요, 구속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자랑을 해도 주 안에서 하라고 했습니다. 「주 안에서 자랑」이 되면, 자기 자랑이 없고, 주님 자랑이 됩니다. 파벌이 없어집니다.
분쟁이 없어집니다. 주 안에서 하나가 될 뿐입니다.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합니다. 전도의 미련한 방법으로 "십자가의 도"를 믿는
미련한 자를 구원하시는 기쁨을 드려야 합니다. 그러니 전도해야 하고, 전도해 보면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고린도교회의 분쟁도 근본적으로는 여기에 충실하지 못하여서 일어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떠난 후 헬라 철학과 성경에 능통한 유창한 웅변가인 아볼로가 내려와서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여 공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으로(행18:28),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유창하게 설교하는 아볼로를 추종하게 되고, 아볼로파가
생겼습니다. 더욱이 「그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고, 사도 바울을 악평하고
있습니다(고후10:10). 물론 사도 바울은 자신이 "말에 졸하다"고 시인합니다. 그러나 고린도에 복음을 가져왔고, 고린도교회의 개척자이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을 낳은 아비입니다(고전4:15). 한마디로 이런 악평은 그 믿음의 뿌리가 하나님의
능력에/사랑에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사도 바울과 아볼로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
곧 동역자입니다. 바울과 아볼로 사이에 불화의 모습이 없습니다. 각각의 받은 달란트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파당을
지어 분쟁하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저더러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되 지금은 갈 뜻이 일절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는 말씀에서 보듯 두 사람 사이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아마도 아볼로가 떠난 후 고린도교회가 사역자를 초청하는 과정에서
성도들끼리 분파가 생긴 것 같습니다.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십자가의 도"가 미련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십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고 했습니다(롬1:16). "십자가의 도"를 통해 구원하시는 하나님, 미련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 했습니다(본문25절).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지 않으셨다면, 지혜 있는 자도 능한 자도 문벌 좋은 자도 못되는 나 같은 죄인이 어찌
구원 얻을 수 있겠습니까! 감사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전도의 미련한 방법으로 "십자가의 도"를 믿는 미련한 자를 구원하여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